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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919년 일어난 독립운동을 기념하는 3·1절이 지났습니다. 그래서 최근 개봉한 일제강점기 배경의 영화 두 편인 '귀향'과 '동주'가 더 많은 관심을 받았습니다.
그 중 '동주'는 '서시'나 '별 헤는 밤'으로 유명한 시인 윤동주(1917~1945)의 일대기를 담담하면서 섬세하게 그려낸 작품으로 눈길을 끌었습니다. 영화가 상영되는 내내 나라를 빼앗긴 상황에서 시를 쓴다는 것을 몹시도 부끄러워했던 시인의 깊은 슬픔과 마주해야 했습니다. 윤동주는 어린 시절부터 함께 자라온 이종사촌 송몽규가 독립운동에 거침없이 투신하는 모습을 곁에서 지켜보며 행동하지 못하는 내적 자아와 끊임없이 갈등합니다. 그것은 나약한 인간의 본능이기에 한편으로는 부끄러워해야 할 것에 대해 부끄러움을 모르고 살아가는 지금 우리의 모습을 돌아보게 만들기에 충분했습니다.
'시도 자기의 생각을 펼치기에 부족하지 않아'라고 했던 작품 속 윤동주의 대사처럼 정제된 언어로 만들어진 시는 때로 산문보다 더 강한 울림을 주기도 합니다. 수인번호 264를 따서 지은 호로 더 알려진 이육사(1904~1944, 본명 이원록) 역시 일제강점기에 활동했던 시인인데 항일운동에 가담하기도 했던 그의 시 '광야'에는 독립에 대한 열망이 더 선명하게 서려 있습니다.
까마득한 날에 / 하늘이 처음 열리고 / 어데 닭 우는소리 들렸으랴 (중략)
지금 눈 내리고 / 매화 향기 홀로 아득하니 / 내 여기 가난한 노래의 씨를 뿌려라
다시 천고(千古)의 뒤에 / 백마(白馬) 타고 오는 초인이 있어 / 이 광야에서 목놓아 부르게 하리라
우리는 여기서 시인의 말을 만나게 됩니다. 이육사는 조국 광복의 염원을 '백마를 타고 오는 초인'으로 노래하였습니다. 백마는 예부터 성스러운 동물로 여겨졌습니다. 장수는 전투를 앞두고 백마의 피를 마시며 충성을 맹세했고 혼례 때 신랑은 백마를 타야 길하다고 믿었습니다. 백마는 시 속에서 나약하고 착취당하는 식민지의 백성을 은유하곤 했던 나귀와 사뭇 비교되는 강인한 존재였습니다. 그래서 암흑기에 나귀처럼 혹은 그림자처럼 숨죽여 살아야 했던 사람들은 백마 타고 오는 영웅, 즉 해방된 조국을 꿈꿨던 것입니다. 2016년의 3월은 그 꿈을 다 꽃피우지 못한 채 조국의 봄이 오기도 전에 타국의 감옥에서 스러져간 젊은 시인의 부끄러움을 마음에 새기며 하루하루를 보냈으면 합니다. /김정희(말박물관 학예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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