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닛 옐런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이 비둘기파 발언을 쏟아내자 신흥시장으로 외국인 자금이 몰리고 있다. 하지만 연준이 올해 두 차례 정도의 금리 인상을 예고하고 있고 경기 둔화, 정정 불안, 중국에서 자본 유출 우려 등 신흥국의 고질병도 그대로여서 일시적 현상에 그칠 것으로 전망된다. 한국도 코스피지수가 3개월 만에 2,000선을 돌파하는 데 외국인 자금이 기여했지만 단기 차익을 노린 ‘핫머니’가 주축이어서 언제든 다시 빠져나갈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29일(현지시간) 파이낸셜타임스(FT)는 국제금융협회(IIF) 추산을 인용해 올해 3월 외국인들의 신흥국 주식·채권 순매입 규모가 368억달러를 기록했다고 밝혔다. 채권과 주식에 각각 189억달러, 179억달러가 순유입됐다. 지난 2014년 6월 이래 21개월 만에 최고치로 2012~2014년 월 평균치인 220억달러를 훌쩍 웃돈다.
신흥시장에는 올 2월에도 54억달러가 순유입되는 등 올 1월까지 7개월 연속 진행되던 외국인 자금 탈출이 소강 국면에 접어든 기색이 역력하다. 연준이 16일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회의에서 비둘기파 신호를 내보내자 신흥국 금융시장이 급속도로 안정되고 있는 것이다.
모건스탠리캐피털인터내셔널(MSCI) 신흥시장 주가지수는 이달 11%나 상승하며 2012년 1월 이후 최대 월간 상승폭을 기록했다. 또 미 달러화가 약세를 보이면서 신흥국 투자 때는 환차익까지 거둘 수 있다.
하지만 외국인의 신흥국 러시가 지속될지에 대해서는 회의적 시각이 팽배하다.
로빈 코프케 IIF 선임이코노미스트는 “신흥국 유입은 선진국 금리가 내려가자 위험 투자가 늘어난 게 주요 이유”라며 “신흥국 펀더멘털이 취약해 연준의 금리 인상 전망이 다시 불거지면 자본 유입이 정체될 수 있다”고 말했다. 또 브라질·멕시코·베네수엘라·말레이시아·폴란드 등 일부 신흥국의 정정 불안도 위험 요인이다.
사정은 한국도 마찬가지다. 외국인은 지난해 12월부터 올 1월까지 무려 6조원어치를 팔아치우며 코스피지수를 1,800 초반대까지 끌어내렸다. 하지만 2~3월 두 달간은 4조원어치를 사들이는 등 ‘널뛰기’ 투자 행태를 보이고 있다. 조연주 NH투자증권 연구원은 “외국인 순매수는 글로벌 시장에서 위험자산 회피 심리가 개선되고 원화가치 상승에 환차익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라며 “신흥국 통화 강세 등이 지속되기에는 불확실성이 커 외국인 매수세가 다시 약화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특히 최근 외국인 자금이 주로 핫머니라는 게 불안 요인이다. 조 연구원에 따르면 2월 국내 시장에 순유입된 외국인 자금 가운데 싱가포르(1조4,000억원), 캐나다(2,000억원), 사우디아라비아(900억원) 등 단기 투자 성향이 강한 국가의 자금이 대다수를 차지했다. 반면 중장기 투자 성향인 미국과 영국은 각각 1조원, 2,000억원 등의 순매도를 기록했다. 조 연구원은 “채권 대비 주식의 상대적인 매력도가 낮고 코스피의 밸류에이션도 부담스러운 수준”이라며 “한국 수출이 14개월 연속 마이너스 증가율을 기록하고 있어 경기 회복을 염두에 둔 자금이 본격적으로 유입되기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뉴욕=최형욱특파원 김연하기자 choihuk@sed.co.kr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