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 정치권이 ‘기업 때리기’로 반기업 정서를 조장하다 선거철만 되면 어김없이 대기업을 내세워 지역 표심을 자극하는 구태가 20대 총선에도 반복되고 있다. 재계에서는 ‘만만한 게 기업이냐’는 볼멘소리가 터져나왔다.
김종인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회 대표는 6일 “광주를 미래형 자동차 생산의 산실로 만들겠다”며 삼성의 미래차 산업을 광주에 유치해 5년간 2만개의 일자리를 창출하겠다는 공약을 발표했다. 김 대표는 이날 국회 당 대표실에서 “광주 경제 살리기와 일자리 창출을 위해 ‘삼성 미래차 산업 광주 유치’를 중앙당 차원의 공약으로 승격하고 총력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텃밭인 광주에서 국민의당에 전패당할 수도 있다는 위기감에 굴지의 대기업인 삼성을 내세워 반전을 시도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삼성전자가 곧바로 “아직 검토한 바 없다”고 해명하면서 목표 달성은 어렵게 됐지만 일부에서는 정치권이 박빙의 선거전을 유리하게 만들기 위해 검토도 안 된 설익은 공약을 남발하는 게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됐다. 삼성전자는 이날 더민주 공약과 관련해 “(자동차) 전장사업의 구체적 추진 방안과 투자 계획을 아직 검토한 바 없다”고 밝혔다. 삼성은 “각 정당의 공약사항에 대해 개별 기업이 언급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생각한다”면서도 “전장사업은 이제 사업성 여부를 모색하는 단계이다”라고 설명했다.
재계에서는 ‘만만한 게 대기업이냐’는 불만이 흘러나왔다. 대기업 오너들을 잇따라 국회로 불러 ‘기업=악덕업체’라는 이미지를 부각해 반기업 정서를 조장하더니 표가 필요하다 싶으면 다시 대기업을 끌어들여 선심성 공약을 내놓고 있다는 지적이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삼성이 미래 신성장동력 중 하나로 추진하는 전장사업이 총선 공약과 맞물려 정당의 이해득실에 휘말리게 되면 사업을 시작하기도 전에 경쟁력이 저해될 수 있다”고 말했다. 안철수 국민의당 상임공동대표는 더민주의 삼성 미래차 유치 공약에 대해 “정치가 시키면 기업이 무조건 따라갈 것으로 생각하는 5공식 발상”이라고 비판에 가세했다. 한국경영자총협회의 한 임원은 “기업들은 일자리 수요와 판로 등 종합적인 요소를 두루 감안한 고도의 경영 판단 아래 입지를 선정한다”며 “정당이 특정 회사를 콕 집어서 해당 기업의 공장을 지역에 유치하겠다고 나서는 것은 기업을 볼모로 한 선심성 공약일 뿐”이라고 일갈했다.
강봉균 새누리당 공동선거대책위원장도 “더민주의 경제민주화 공약은 대기업을 눌러야 중소기업이 잘된다는 얘기인데 (이번 삼성 광주 공장 유치 공약은) 지금까지의 더민주 이야기가 헛소리였다는 것을 증명해 보이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하지만 이런 새누리당도 최근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임금 격차를 4년 내 20% 수준으로 줄이고 최저임금을 시급 8,000~9,000원까지 단계적으로 인상해 중산층 하위권 수준으로 맞추겠다며 기업의 부담은 아랑곳하지 않은 공약으로 재계의 불만을 샀다. 논란이 되자 조원동 새누리당 경제정책본부장은 “오보”라며 번복하는 웃지 못할 해프닝도 있었다. /김홍길기자 what@sedaily.com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