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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와 속도의 로망, 블루 리본





‘블루 리본 때문일 꺼야.’ 초호화 대형여객선 타이타닉호가 1912년 처녀 항해에서 침몰했을 때 사람들은 이렇게 의심했다. 블루 리본상을 타내 위해 빙산지대를 빠르게 지나가다 변을 당했다고….

도대체 블루 리본이 뭐길래. 속도 경쟁이다. 대서양을 가장 빠른 시간 안에 건너는 증기선에 주는 일종의 명예. 유래는 훈장(가터 벨트)에서 나왔다. 경마 우승자나 가장 빠른 양털 운반범선의 마스트 꼭대기에 달아주던 푸른색 리본(Blue Ribbon, Blue Riband로도 표기) 획득 경쟁을 증기선에도 적용하자는 아이디어가 나온 게 1832년. 미국인 변호사에 의해 철도잡지에 처음 실렸다.

제안이 현실화한 시기는 1838년 4월 22일. 미국 뉴저지주 샌디후크항에 몰려든 군중들은 정오 무렵 군데 군데 뜯겨나간 배수량 1,995톤짜리 증기 범선 시리우스(Sirius)의 입항에 환호성을 질렀다. 속도 기록을 세우며 입항한 시리우스는 항해 도중 석탄이 떨어지자 선체의 목재를 뜯어내 연료로 쓰며 항구에 들어왔다.

연료인 석탄이 없다고 해도 시리우스호는 왜 바람을 받을 대형 돛을 펼치지 않았을까. 영국과 미국 엔지니어들이 정한 속도 경쟁의 세부 규정을 지키기 위해서다. 증기 동력만으로 항행하는 여객선만 경쟁 자격을 줬기에 돛을 펼쳐 바람을 받을 수 없었다.* 자신을 태워가며 항해한 시리우스호의 기록은 18일 14시간 22분(평균 시속 8.03노트). 범선으로 40일씩 걸리던 항해기간을 절반으로 줄였다.

시리우스호는 이 기록 덕분에 속도 경쟁 최초 승리자(당시에는 ‘블루 리본상’이라는 용어가 없이 증기선 속도 경쟁이라고만 불렸다)로 간주된다. 그러나 최초 수상이라는 타이틀만 가졌을 뿐, 기록은 단 하루 만에 깨졌다. 그레이트이스턴호(2,300톤)가 8.66노트 기록을 세웠기 때문. 미국 이민수요를 타고 황금기를 구가하던 대서양노선에는 이때부터 본격적인 경쟁이 붙었다.

증기선끼리의 대서양 속도 경쟁 2년 3개월 뒤인 1840년 7월에는 목조 외륜선 브리타니카(RMS Britannica)호가 증기 여객선으로는 처음으로 대서양 정기항로에 투입됐다. 승무원 93명과 선주 가족을 비롯한 승객 63명 외에 신선한 우유를 공급하기 위한 젖소까지 실은 브리타니카호가 보스턴에 닿았을 때 보스턴 시민들은 ‘메이플라워호 도착 이래 최대의 사건’이라며 반겼다고 한다.

속도가 빨라지고 크기가 커진 배는 더욱 많은 이민 수요를 나르고, 돈이 되는 대서양 정기항로에 더욱 좋은 배가 투입되는 선순환 속에서 속도의 벽도 점차 부서졌다. 1843년과 1889년, 각각 10노트와 20노트의 벽이 조선기술 앞에 무너졌다. 1935년과 1936년, 노르만디호와 퀸 메리호는 동쪽 항로와 서쪽 항로에서 각각 ‘마의 30노트’선마저 넘어 버렸다.

선박의 크기도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커졌다. 내부 장식으로는 역대 최호화여객선으로도 평가되는 프랑스의 노르만디호는 6만 8,500톤, 영국의 퀸 메리호는 8만 1,961톤에 20만 마력의 엔진을 달았다. 350~700마력이던 초기의 블루 리본 수상 증기선과는 하늘과 땅의 차이. 당연히 건조비용도 많이 들어갔으나 갈수록 각국은 보조비 지급을 아끼지 않고 블루 리본 상에 달려들었다. 왜 그랬을까.



속도 경쟁에는 언제든지 군사적 목적으로 전용하겠다는 숨은 목적이 깔려 있었다. 영국의 언론은 독일 해운회사가 블루 리본을 받을 때마다 호들갑을 떨었다. 찰스 킨들버거의 ‘경제 강대국 흥망사’에는 영국이 블루 리본을 1897년 건조된 빌헬름 대제호와 1900년 건조된 도이칠란트호에 각각 빼앗겼을 때 상황이 나온다. 영국은 충격으로 여기고 막대한 보조금을 지급해 크고 빠른 여객선을 건조해댔다.

전쟁으로 블루 리본 상을 향한 속도 경쟁이 중단됐던 제 1차 세계대전 와중인 1915년 독일해군의 무제한 잠수함 작전으로 격침 당해 미국의 참전을 야기한 루시티아나호(4만 4,060톤) 역시 1907년 레이스의 승자였다. 각국 정부가 지원하는 막대한 보조금으로 건조된 대형 쾌속 여객선들은 2차대전에서도 맹활약했다. 처칠 영국 총리가 승전후 ‘블루 리본를 따내려고 건조한 대형 여객선이 병력을 신속하게 수송한 덕분에 2차대전을 1년 남짓 빠르게 끝낼 수 있었다’고 말했을 정도다.

그렇다면 정말로 타이타닉호도 블루 리본을 의식한 무리한 항해 때문에 침몰했을까. 그렇게 보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다. 타이타닉의 선사인 화이트라인사가 블루 리본을 거의 독차지하던 커나드사와 경쟁 관계인 것은 사실이지만 같은 영국계 해운사라도 둘은 경영 방침이 달랐다. 속도를 중시한 커나드사에 비해 화이트라인사는 승객의 안락한 항해에 비중을 뒀었다. 타이타닉호가 속으로는 블루 리본을 의식했는지는 몰라도 침몰 당하지 않았다면 전쟁에서 병력 수송선으로 활용됐을 것이라는 사실은 분명하다.

유사시 수송함으로 쓰일 속도 빠르고 큰 배의 끝판 왕은 1952년 건조된 유나이티드 스테이츠(US)호. 크기는 초대형보다 다소 작은 47,264톤이지만 건조 당해년도인 1952년 대서양을 3일 10시간 40분 만에 건넜다. 당시 기록한 평균 속도 35.59노트(약 66㎞)는 아직까지 대형 여객선으로는 최고 기록으로 남아 있다. US호는 여러 측면에서 여전히 관심거리다. 공식적으로 발표된 최고속도는 39노트지만 실제로는 44노트였다. 1972년부터 보존에 들어간 이 배의 해체 또는 재활용 여부는 미국에서 해묵은 논란거리다. 최근 매입 의향을 밝히고 크루즈여객선으로 개조하겠다는 해운사가 나타났으나 불투명하다.

대양에서 대형 여객선간의 속도 경쟁은 재연될 수 있을까. 어려워 보인다. 제트여객기를 타고 안락하게 세계를 여행하는 마당에 초고속 여객선에 대한 관심이 되살아날지 의문이다. 다만 속도 자체에 대한 인간의 호기심은 여전히 남아 비공식적인 블루 리본 수상 경쟁만큼은 여전히 펼쳐지고 있다.

최근에는 호승심 강한 부호들이 시속 50노트를 내는 초고속 개인 요트를 타고 기록을 만들어 내고 있지만 관심과 감흥은 예전 같지 않다. 초대형 여객선이 거대한 물보라를 일으키며 달리던 시절을 오히려 더 기억한다. 바다에 향한 로망, 속도에 대한 도전의욕, 그리고 어려움을 돌파하고 싶은 염원이 마음 속에 내재해 있기 때문일 터. 우리 사회가 쾌속 순항하면 좋겠다. 지속적으로.

/권홍우 논설위원 겸 선임기자 hongw@sedaily.com

* 선체를 태웠던 시리우스호의 얘기는 소설가 쥘 베른에게도 영감을 줬다. ‘80일간의 세계일주(1872년작)’에서 대서양을 건너는 헨리헤타호의 연료가 떨어지자 주인공 포그가 철골만 남기고 모든 것을 뜯어 태우며 가까스로 영국에 도착하는 장면은 시리우스호 입항의 재연 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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