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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요일 아침에]구조조정 성공의 조건

한기석 논설위원

제2의 쌍용차 사태 원치 않으면

해고 안전망 획기적으로 높여야

재원은 사회적 합의 거쳐 증세로

대주주·노조 모럴 해저드 안될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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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여름 평택은 쌍용자동차 노조의 파업으로 일촉즉발로 치달았다. 6월8일 쌍용차는 정리해고를 단행했고 노조는 이에 맞서 장장 77일간의 공장 점거 투쟁을 벌였다. 8월6일 해가 저물 무렵 공장 정문 앞 공터에서 노사 합의문 발표 내용을 들으며 나도 모르게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무엇보다 공장 안에 수북이 쌓여 있던 폭발 물질이 진짜로 터질 수 있다는 공포감에서 벗어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쌍용차 파업 현장이 생명의 위협을 느낄 정도로 심각하고 처절해진 데는 느닷없는 구조조정을 그대로 받아들일 경우 살길이 막막해진다는 노동자의 절박함이 크게 작용했다. 파업 종료 뒤 회사를 떠난 사람들은 공공근로, 대리운전, 택시운전, 건설 노동자, 평택항 일용직 등을 전전했다. 파업 극렬분자라는 낙인이 찍혀 그런 일자리라도 구하면 다행이었다. 그렇게 몸과 마음이 무너졌고 확인된 사람만 28명이 스스로 삶을 끝내는 참담한 결과를 빚었다.

요즘 조선·해운업종의 구조조정 움직임이 가시화하면서 부산·울산·거제의 노동자들이 불안해하고 있다. 이곳에서는 지난 2년간 2만명에 가까운 실업자가 이미 생겼다. 앞으로 본격적인 구조조정이 시작되면 실업자는 훨씬 더 늘어날 것이다. 구조조정을 제때 하지 않고 미루다 이런 실업자 양산 사태가 벌어진다고들 얘기한다. 구조조정을 미루는 동안 실업 대책이라도 잘 세워놓으면 좋았을 텐데 그때나 지금이나 달라진 것은 별로 없다. 해고당하면 퇴직 전 평균임금의 50%를 90~240일간 받는다. 재취업을 위한 직업훈련을 받으면 직업능력개발 계좌제로 200만원까지, 실업자 훈련 지원으로 월 11만6,000원이 지급된다. 다들 알다시피 이미 아끼고 아껴서 지출하는데 수입이 절반으로 줄면 당해낼 수가 없다.

실업대책이 7년 전과 크게 다르지 않다면 해고를 대하는 노동자의 태도도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고 해고가 살인이 된 쌍용차 파업 사태가 여기저기서 동시다발적으로 다시 벌어지기를 기다릴 수는 없지 않은가. 구조조정이 불가피하다면 해법은 해고 안전망을 획기적으로 높이는 일밖에 없다. 이를 위해 필요한 재원은 사회적 합의를 통해 마련해야 한다. 유일한 방법은 증세다. 국민은 소득세를 더 내고 회사는 법인세를 더 내야 한다.

해고 안전망의 혜택은 특별한 누군가에만 돌아가서는 안 되며 모두에게 똑같이 적용돼야 한다. 특별한 업종, 특별한 지역에만 적용되는 특별고용지원업종제도나 고용위기지역제도는 될 수 있으면 삼가야 한다. 특별한 지원을 받은 기업과 업종은 나중에 경영이 정상화할 때 반드시 받은 지원에 이자까지 붙여 갚아야 한다. 그래야 특혜 시비와 차별 논란이 벌어지지 않는다.



회사 성장의 과실이 모두에게 돌아가야 하듯 부실의 책임도 나눠서 져야 한다. 기업 부실의 책임은 노동자보다는 경영진과 소유주가 훨씬 더 많이 짊어져야 한다. 이번에 최은영 전 한진해운 회장 일가는 자율협약 신청 전 주식을 전량 팔아치워 푼돈 손해도 입지 않고 침몰하는 배에서 먼저 빠져나갔다. 고재호 전 대우조선 사장은 3조원의 부실을 숨겨놓고는 지난해 21억원이 넘는 급여를 챙겼다. 이런 일을 그대로 두면 노동자 가슴에 불이 붙는다.

현대중공업 노조는 이 와중에 올해 임금단체협약 요구안으로 기본급 6.3%(9만6,712원) 인상, 직무 환경수당 상향 조정, 퇴직자만큼의 신규 인력 채용, 조합원 100명의 해외 연수 등을 사측에 제시했다. 회사 경영진이나 대주주가 노조에 무슨 큰 책을 잡히지 않고서야 노조가 이런 요구를 할 수는 없다. 그게 아니면 제정신이 아니다.

구조조정은 수술이다. 환부에 칼을 대야 회복되듯이 구조조정이라는 아픔을 겪어야 경제가 살아난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아픔을 최소화하는 것이며 이를 위해서는 모두가 그 아픔을 감수해야 한다. 누군가에게 전가해서는 구조조정은 성공하지 못한다.

/hanks@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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