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테크와 취미인 야구를 동시에 즐길 수 있는 야구펀드에 3년째 투자 중인 임천석(39)씨는 지난해 말 거래 증권사로부터 뜻밖의 전화를 받았다. 수익률이 좋지 않고 자금 운용이 어려워 펀드를 청산하기로 했다는 내용이었다. 프로야구 구단을 운영하는 기업에 투자하는 하나UBS자산운용의 ‘하나UBS프로야구그룹주’ 펀드는 출시된 지 3년여 만인 지난 1월10일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한류·명품·통일 등 특정 테마와 관련이 있는 자산에 투자하는 이색펀드들이 금융당국의 소형펀드 청산정책에 따라 시장에서 사라질 운명이다. 이들 이색 펀드 중 야구펀드·한류펀드·명품펀드 등은 시장 수익률보다 높은 수익률을 올리며 인기를 끌었지만 투자자들이 해외펀드와 상장지수펀드(ETF) 등으로 쏠리며 추가 자금이 유입되지 않아 소형펀드에 그치고 있다.
29일 한국펀드평가 펀드스퀘어에 따르면 이색펀드로 분류된 63개 상품 중 77%인 49개가 설정액 50억원 미만으로 나타났다. 특히 이 가운데 절반에 가까운 22개 펀드는 설정액이 5억원 이하의 ‘초소형펀드’이다. 금융감독원은 지난해 11월 펀드의 운용효율을 높이기 위해 ‘소규모 펀드 해소방안’을 발표하고 증권사들과 운용사에 자투리 펀드 청산을 촉구하고 있다. 운용기간 1년 이상 된 펀드 중 설정액이 50억원 미만인 소규모 펀드를 올해 말까지 단계적으로 정리한다는 방침이다. 각 운용사별로 소규모 펀드 비중을 오는 6월 말 11%, 연말까지 5% 이하로 비중을 낮추지 않으면 신규 펀드를 출시할 수 없다.
소형펀드 청산에 이색펀드가 대거 목록에 오른 이유는 특정 산업에만 초점을 맞춘 탓에 박스권 장세에서 낮은 수익률에 자금이 꾸준히 빠지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정리 완료된 펀드는 ‘하나UBS프로야구그룹주’ 펀드 하나뿐이지만 앞으로 줄줄이 청산이 이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랄프로렌·루이비통 등 전 세계 명품기업 50여곳에 투자하는 ‘한국투자글로벌브랜드파워2(주식)(A)’는 연초 이후 수익률이 시중금리보다 낮은 0.83%에 불과해 청산 1순위로 꼽힌다. ‘통일 펀드’ 4개 상품의 1년 수익률은 마이너스로 각 설정액이 21억원 미만이다. 이들 펀드는 지난 2014년 박근혜 대통령의 ‘통일은 대박’ 발언과 맞물려 서둘러 출시됐다. 통일 펀드는 수익률을 올리지 못하며 다른 펀드에 합병되거나 해지될 예정이다.
이색펀드를 보유한 투자자들의 속은 터지고 있다. 펀드를 장기 보유한 투자자들은 원금 회복의 기회를 빼앗았다고 주장한다. 업계 관계자는 “기존 펀드를 다른 펀드에 합병하려면 시스템 또는 회계상 과정이 복잡하다”며 “증권사들이 펀드 합병보다는 해지로 가닥을 잡을 것”이라고 말했다. 투자자들은 펀드 해지 시점의 손해를 고스란히 부담하게 된다.
/이주원기자 joowonmail@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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