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공사를 주로 했던 A사는 최근 정부와 지자체 등이 발주하는 프로젝트에 대해 선별적 수주에 나서기로 했다. 말이 ‘선별적’이지 사실상 수주를 하지 않겠다는 것. 현재의 입찰제도하에서는 마이너스 수익은 물론 더 나아가 ‘가격 담합’이 불가피하다. A 건설사 임원은 “공공공사에서 이익을 내고서 담합 과징금이라도 냈으면 소원이 없겠다”며 “범죄자 취급을 받는 것보다 아예 안 하는 것이 좋겠다는 게 그룹 고위층 생각이다”라고 말했다.
이란에서 초대형 건설 수주 양해각서(MOU)를 체결한 B사는 요즘 고민이다. 본계약으로 연결되려면 수출입은행 등 정부의 금융지원이 있어야 한다. 문제는 발주처인 이란의 신용등급이 낮아 이 같은 지원이 쉽지 않다는 것. 여기에 지금도 해외 수주로 막대한 손실을 보고 있는데 이란에서 또 초대형 손실을 입지 않을까 걱정하고 있다. B사 임원은 “해외 건설에서 발생한 손실을 아직도 처리하지 못했다”며 “(윗분들의 생각이) 손실을 감수하면서까지 수주를 진행할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C사는 요즘 주택 수주를 거의 하지 않는다. 이유는 재개발·재건축 등의 수주 과정에서 각종 민원과 비리가 발생할 가능성이 많아서다. 주택 사업을 통해 벌어들이는 이익보다 민원과 비리 발생에 따른 폐해가 더 크다는 것이 고위층 판단이다. 걸핏하면 주택 투기다 뭐다 해서 눈총을 받는다. 말썽이 나는 곳에는 아예 발을 들여 놓지 않겠다는 계산이다.
위의 세 가지 사례는 건설업계가 처한 요즘의 현실을 잘 보여주고 있다. 겉으로 보면 신규 분양시장 열기가 지속되면서 호황을 누리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실상은 전혀 그렇지 않다. 주택시장 열기가 식으면 미분양이 쌓이는 것은 순식간. 그런 미분양은 회사의 운명까지 위태롭게 한다. 여타 많은 그룹에서 건설사, 더 나아가 건설업종을 현재와 같은 규모로 유지해야 되는지를 놓고 여간 고민이 아니다.
시장의 시각도 별반 다르지 않다.인수합병(M&A) 매물로 나온 건설사 입찰에 기업 등 전략적 투자자가 참여하지 않고 재무적 투자자만 눈길을 두고 있다. 현재의 투자가치는 물론 미래의 전망조차 불투명하게 보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건설업은 미래가 없는 것일까.
결론적으로 4차 산업혁명을 주도할 ‘사물인터넷(IoT)’에서 건설업은 주요 역할을 충분히 할 수 있다는 점이다. IoT는 요즘 ‘만물인터넷(IoE)’으로 개념이 확대되면서 모든 것이 하나로 연결되는 세상을 예고하고 있다. 특히 한국은 평창 동계올림픽을 기점으로 이동통신에서 ‘5G’가 본격적으로 활용된다. 5G 시대 개막은 피부로 느끼는 IoT, 더 나아가 IoE 시대를 앞당길 것으로 보인다.
IoT는 이를 컨트롤하는 ‘기기(스마트폰)’와 이를 담을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다. 그 공간이 바로 우리가 살고 있고 업무 등을 보는 주택과 건물이다. 쉽게 설명해 주택과 정보통신기술(ICT)이 결합하면 그것이 곧 IoT인 것이다. 그런 공간을 만들고 창출하는 것이 바로 건설업이다. 일반인들이 피부로 4차 산업혁명을 느낄 수 있는 곳이 바로 ‘공간’이다.
더 나아가 공간은 도시로 확장된다. 그런 도시를 새롭게 설계하고 그에 맞춰 주택과 오피스 등을 짓는 것도 건설업이다. 건설업이 ‘노가다’로 취급 받으며 저가의 부가가치를 창출했다면 앞으로는 ‘ICT와 부동산의 융합’이라는 고가의 부가가치를 만들어낼 여력이 충분한 셈이다.
많은 그룹에서 건설업의 가치를 외면하고 있을 때 타 업종에서는 오히려 부동산업에 진출하고 있다. 통신사들이 대표적이다. 통신사들은 요즘 기존 인프라에 주택사업까지 결합하고 있다. 주택과 ICT 결합이 가져올 효과를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이종배 건설부동산부장 ljb@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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