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웨이는 가격보다는 브랜드 때문에 손님들이 많이 찾습니다. 오포나 비보는 저렴해서 고객들이 좋아하죠.”(태국 판팁 플라자 A매장 직원)
동남아시아 시장의 거점으로 평가받는 태국에 중국산 스마트폰 돌풍이 거세게 불고 있다. 비교적 특허 분쟁이 적어 진출이 유리한 데다 가격 경쟁력이 높아 현지 소비자들에게 친숙한 브랜드로 자리 잡은 것이다. 특히 삼성전자에 최근 특허소송을 제기한 중국 업체 화웨이는 태국 진출 3년여만에 현지에서 프리미엄급에 버금가는 브랜드 이미지를 구축했다.
지난 26일(현지시간) 찾은 태국 최대 전자상가인 방콕 ‘팝틴 플라자’에선 중국 브랜드의 제품들이 상가 1층 곳곳에 즐비하게 늘어서 있었다. 한국에선 찬밥 취급 받던 중국산 전자기기들이 이곳에선 이미 주류였다. 현장에서 스마트폰을 판매하던 한 직원은 중국산 스마트폰들을 가리킨 뒤 “한국제품 못지 않게 성능이 좋다”며 구매를 종용했다.
중국산 스마트폰이라도 브랜드마다 판매 전략은 달랐다. 화웨이는 자사의 ‘메이트8’ , ‘P9’스마트폰 등 상위기종을 태국에 출시하면서 삼성전자 고가폰과 같은 가격대에서 영업하고 있다. 단기적인 박리다매에 연연하기보다는 중장기적인 관점에서 고급 브랜드 이미지를 쌓으려는 포석으로 풀이된다. 그 덕분에 화웨이 스마트폰들은 지난 2013년 태국 시장에 진출한 이후 단기간에 삼성전자나 애플에 버금가는 프리미엄급 제품 대우를 받고 있었다. 실제로 팝틴플라자에 진열된 메이트를 보면 1만9,990바트(약 66만원)의 가격표가 붙어 있었는데 이는 삼성전자 갤럭시노트5가 현지에서 1만9,000바트대에서 팔리는 것과 비슷한 수준이다. 반면 다른 중국 브랜드들은 저렴한 가격을 중심으로 보급폰 시장을 공략하고 있다. 팝틴플라자의 또 다른 직원은 “오포 스마트폰은 비슷한 사양의 삼성전자 제품보다 7,000바트(약 23만원)정도 싸다”고 소개했다.
중국산 가상현실(VR)기기의 공세도 만만치 않다. 기어VR이 3,500바트(약 12만원)에 판매되고 있는 3층 삼성 매장 바로 옆 상점에서는 중국산 유사 제품들이 590~990바트(약 2만~3만원) 수준에 팔리고 있었다. VR시네콘, VR박스 등 중국 가상현실기기를 착용해본 한 소비자는 “어지러움이 약간 더 심한 것 같긴 하지만 가격대비 성능으로 봤을 때 살만한 것 같다”며 “기술력이 점점 평준화되고 있는 것 같다”고 평가했다.
이동통신 업계 한 관계자는 “태국에는 토종 정보통신기기 제조사가 없어 현지 특허 관련 기관이 따로 보호해 줄 기업이 없기 때문에 중국 제조사들의 진출이 상대적으로 용이하다”며 “태국은 인터넷보다 스마트폰 보급률이 높은 국가로, 중국 브랜드들의 영향력은 더욱 커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화웨이 등 중국업체들은 태국을 거점시장으로 중시하는 이유는 중국인들이 동남아시장에 투자를 하거나 여행을 하려고 할 때 가장 먼저 찾는 관문이기 때문이다. 태국에는 남부지역에 ‘태국-중국 라용산업지구’가 들어섰을 정도며 태국에 대한 외국인직접투자 순위에서 중국은 지난해 싱가포르, 일본, 미국에 이어 4위로 올라섰다. 태국의 스마트폰 내수시장이 급성장세인 점도 중국 전자업체들이 공을 들이는 배경으로 꼽힌다. 시장조사기관 이마케터(eMarketer)에 따르면 지난 2013년 1,440만대에 그쳤던 태국 스마트폰 이용자수는 올해 2,000만명을 돌파한 뒤 2019년에는 2,500만명에 육박(2,480만명)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삼성전자는 동남아시아 지역 부동의 1위 자리를 지키고 있지만 신흥국을 중심으로 브랜드와 가격 양면에서 공세를 펴는 중국업체들의 추격을 만만히 봐선 안 된다는 게 관련 업계의 지적이다. /방콕=권용민기자 minizzang@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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