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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정의 주가조작…1962년 증권파동





약 91조원. 코스피시장의 5월 거래대금이다.(31일분은 미포함) 지난해 세수 추정액 218조원에 훨씬 못미친다. 시계를 54년전 5월로 돌려보자. 한달 거래대금이 2,510억환. 연간 국세수입 2,212억환을 가볍게 뛰어넘었다. 경제 건설을 내걸고 감행한 5.16 쿠테타 1주년을 맞은 1962년 5월의 증시는 뜨거웠다. 한달 거래대금은 증권거래소가 탄생한 1956년부터 6년간 거래대금 총액과 맞먹었다.

증권거래소가 위치한 명동은 투자자들로 북적거렸다. 날이 새면 몇 억환 부자가 생겨났다. 주변 상인들은 생업을 버리고 모여들었다. 거래소 근처 여관은 지방에서 올라온 투자자들로 방이 모자랐다. 주가 폭등의 원인은 투기. 상장주식이라야 달랑 12개 종목에 불과했던 당시 시장의 주류는 대증주(증권거래소)와 연증주(증권금융), 한전주(한국전력) 등 3개 주식. 전체 거래량의 93%를 점했다.

가장 먼저 한전주를 시가보다 다소 낮은 가격에 불하받아 작전을 위한 실탄을 만든 세력들은 연증주와 대증주로 범위를 넓혀 나갔다. 어떻게 시가보다 낮게 받았을까. 권력을 통해서다. 작전세력을 감시하고 징계할 재무부는 오히려 이들을 도왔다. 작전세력이 다름 아닌 ‘혁명주체’의 중추였던 까닭이다. 혁명주체 중에서도 민정 이양 후 복귀하자는 약속 대신 군복을 벗고 정권을 세우자는 측이 주로 움직였다.

주가가 폭등하고 이상 징후가 감지되자 당시 증권거래소 이사장은 과열을 진정시키려 증거금 인상, 가격 등락폭 제한에 ‘대증주 상장 폐지 검토’ 같은 투기억제책을 내놓았으나 바로 잘렸다. 권력은 물론 재무부와 금융통화위원회, 증권거래소까지 장악한 세력들은 끝없이 가짜 공방전을 펼치며 대증주 주가를 120배까지 끌어올렸지만 파국이 다가왔다. 증권거래소가 부도를 피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거래소의 부도’가 이상스럽게 들리겠지만 당시 거래소는 주식회사 체제였다. 더욱이 ‘보통거래’가 성사되지 않을 경우 대신 결제할 책임도 있었다. 당시의 보통거래란 일종의 외상. 매매가 성립되어도 2개월간은 매수 대금을 받지 않았다. 결제일에 대금을 못 내도 거래소가 대신 결제해주고 이자를 물렸다. 거래소가 일종의 대출기능을 수행한 이 방식의 취지는 금리 부담을 안겨줘 투기를 막으려는 것이었으나 폭등장세에서 그 누구도 금리에 신경 쓰지 않았다.

거래소가 대신 결제해줘야 할 부담이 눈덩이처럼 불어나자 재무부는 한국은행의 반대에도 한은의 ‘한도외 융자’ 방식으로 4월 중순부터 20억환, 30억환, 230억환을 차례 차례 거래소 결제대금용으로 집어 넣었다. 거품 규모도 그만큼 커졌다. 밑 빠진 독처럼 한은의 융자금을 집어삼키며 굴러가던 주식시장과 증권거래소는 5월 31일 오후장에서 마침내 두 손을 들고 말았다. 증권거래소 부도로 인한 긴급 휴장.

대납자금 부족에 따른 휴장은 정부의 긴급 지원(280억환)으로 닷새 만에 풀렸으나 책임 공방전 속에 혼란이 지루하게 이어졌다. 주식시장은 휴장과 개장을 거듭했다. 1962년 8월31일에도 휴장에 들어가 9월 4일에야 다시 문을 열었다. 같은 해 12월4일과 18일에도 같은 일이 반복됐다. 시장의 신뢰는 땅에 떨어진 가운데 해를 넘긴 1963년 2월26일에는 사상초유의 무기휴장에 들어갔다. 주식시장이 다시 열린 시기는 5월8일. 73일간의 휴장 기록을 남겼다.



문제는 5,300여명 개인투자자들이 쪽박을 차고 막대한 한은 자금을 날리고도 처벌 받은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는 점. 1963년 재판이 열렸으나 모두 무죄 판결을 받았다. 사건의 열쇠를 쥔 중앙정보부장이자 박정희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의 최측근인 김종필씨는 외국에 나가 있다는 이유로 기소 대상에도 오르지 않았다. 주가 조작으로 마련된 자금을 공화당 사전 창당자금으로 전용했다는 의혹만 남았다.

당사자들이 침묵하고 사건도 세월 속에 묻혔으나 ‘권력이 비리의 몸통’이라는 의혹은 1995년 공개된 ‘한국의 부패 문제’라는 미국 국무부의 비밀 보고서를 통해 사실로 드러났다. 한국의 1962년 증권파동을 영국의 1720년 주가조작 사건인 ‘남해버블 사건 이후 최악’으로 평가한 보고서도 있다. 권력에 눈이 멀어 염치를 잃었던 권력은 주가조작 뿐 아니라 다른 범죄도 저질렀다.

사행성 기기를 밀수하고 특혜를 준 빠징꼬 사건, 군의 자재와 병력을 민간 공사에 활용한 워커힐 사건, 한국의 자동차공업 발전을 10년을 막았다는 새나라 자동차 사건 등 이른바 ‘4대 의혹사건’은 바로 이 시기에 꼬리를 물었다. 주한미군을 위한 호텔을 건설해 외화를 회득하자던 워커힐 건설의 부지 보상과 자재 구매에 부정이 끼고 군 병력과 장비가 무상으로 동원됐다는 미국 언론 보도로 주한미군의 워커힐 출입이 금지돼 재정난이 빚어진 적도 있다.

권력의 주가 조작은 증권 시장에 더없는 생채기를 안겼다. 종합주가지수가 증권파동 이전 수준을 회복하는 데 10년이 걸렸다. 한국 경제는 더 큰 병에 걸렸다. 투자자들의 외면으로 증시를 통한 내수자금 조달 통로가 막혀버리자 정부는 외자조달에 목을 걸었다. 거액의 차관을 만지는 동안 ‘떡 고물’이 판치고 부패구조와 관치금융이 자리 잡았다. 1980년초 대출의 90%가 정책자금이었으니 자금의 흐름도 기형적 구조로 변했다.

한국 사회가 받은 악영향은 더욱 치명적이다. 국가적인 범죄를 저질러도 처벌받지 않는 관행 속에 바르게 살기 보다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치부하는 황금만능주의와 몰가치의 사고구조가 굳어졌다. 요즘이라고 다를까. 탈세와 위장 전입, 부동산 투기, 병역 기피가 무슨 고위공직자 후보의 자격처럼 변해버린 한국병의 근원은 어디일까. 국가와 민족의 발목을 잡는 부정과 부패는 몰염치와 망각의 온상 속에서 자란다.

/논설위원 겸 선임기자 hongw@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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