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연 정부의 기대대로 될까. 추경은 긴급한 필요로 발생하는 일시적 예산이다. 당연히 어느 곳에 얼마나 투입돼야 하느냐가 먼저 결정돼야 한다. 하지만 급하게 추경을 짜다 보니 정부는 ‘20조원+α’라는 규모만 정했을 뿐 용처는 제시하지 못했다. 설명이라고는 고작 “구체적인 분야와 재원 배분은 향후 편성과정에서 결정할 것”이라는 게 전부다. ‘본말전도’ ‘깜깜이 추경’이라는 비판이 등장하는 이유다.
우리는 메르스 추경 때도 똑같은 경험을 했다. 11조원 넘게 책정하면서도 국회 제출 전까지 어디에 쓸지 내용을 제대로 밝히지 못했다. 그 결과 메르스나 가뭄과는 전혀 관계없는 지방 고속도로 건설, 중소기업 및 창업 지원 등이 추경에 끼어드는 것을 막지 못했다. 올해도 야당에서는 예산 일부를 누리과정 예산으로 써야 한다고 주장한다. 투입 효과는 없이 국민 부담만 늘지 않을까 걱정이 앞선다.
유일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추경은 타이밍”이라며 “국회에서 조속히 처리해달라”고 당부했다. 맞는 얘기지만 선후가 틀렸다. 용처에 대한 국민의 동의를 구하는 것이 빠른 국회 통과에 우선돼야 한다. 가뜩이나 추경 무용론이 힘을 얻고 있는 게 현실이다. 정치권의 포퓰리즘이 끼어들 여지를 차단하지 못한다면, 예산이 엉뚱한 곳으로 새 나간다면 이번에도 실패작이라는 평가를 받을지 모른다. 추경은 타이밍보다 선택과 집중이 훨씬 더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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