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지하철 3호선 동대입구역 5번 출구 방향으로 가다 보면 장충체육관으로 바로 연결되는 지하통로가 나온다. 이곳 한쪽 벽면에는 서울시민들의 낡은 서랍 속에 들어 있던 사진으로 전시한 ‘시민 사진 공모전’ 입상작품들이 전시돼 있다. 장충체육관의 역사를 보여주는 그때 그 시절의 사진들이다. 이처럼 장충체육관은 많은 사람의 추억이 서린 곳이다.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고 했다. 도시의 변화는 그보다 훨씬 빠르다. 하지만 장충체육관은 그 변화가 빠른 도시의 한복판에 서 있으면서도 50년이 넘도록 꿋꿋하게 그때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 영욕의 세월 고스란히 품은 50년
많은 체육인 스포츠 드라마 펼쳐진 현장
‘체육관 선거’ 어두운 현대사 무대 되기도
김 감독만의 얘기는 아닐 것이다. 과거 추억의 스타부터 시작해서 현재 한창 전성기를 누리고 있는 선수들까지 대다수의 배구 선수들에게 장충체육관은 각별한 장소로 남아 있다. 배구인들에게만 해당하는 얘기도 아닐 것이다.
장충체육관은 한국 실내체육관의 효시다. 지난 1963년 개관 이후 배구뿐 아니라 농구·권투·레슬링 등 수많은 스포츠 경기가 열렸으며(장충체육관을 관리하는 서울시설공단에 따르면 안타깝게도 공식 기록은 남아 있지 않다) 많은 체육인의 땀과 눈물이 스며들어 있는 곳이다. 체육인이 아닌 일반인들에게도 각별한 장소이기는 마찬가지다. 입 다물고 조용히 사는 것이 미덕으로 여겨지던 시절 장충체육관은 갑남을녀들이 자신의 감정을 여과 없이 쏟아낼 수 있는 몇 안 되는 공공장소 중 하나였다. 이처럼 사람들에게 잠시나마 표현의 자유(?)를 선사했던 장충체육관이 한편으로는 사람들의 자유를 억압하는 정치적인 사건의 무대가 됐다는 점은 역사의 아이러니다. 장충체육관은 한국 민주주의를 가로막은 ‘체육관 선거’가 실시된 곳으로 과거 독재정치의 어두운 기억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장소이기도 하다.
●필리핀 원조설 시달린 우리 작품
이명박 前대통령 발언으로 근거없는 소문
한국 1세대 건축가 김정수씨가 설계 맡아
장충체육관은 오랫동안 ‘필리핀 원조’ 논란에 시달린 건축물이기도 하다. 장충체육관은 1955년 육군체육관으로 지어진 건축물을 1959년 서울시가 운영을 맡아 개·보수한 후 1963년에 개관했다. 유엔에 따르면 장충체육관 개·보수를 시작한 1960년 필리핀의 국내총생산(GDP)은 67억달러로 한국(39억달러)에 비해 부강한 나라였다. 이 때문에 한국전쟁 이후 어려웠던 시기에 한국보다 잘살고 기술력도 있었던 필리핀의 도움을 받아 지어진 건축물이라는 얘기가 오랫동안 떠돌았다.
실제 2010년 한 종합일간지는 “1963년 한국 최초의 실내체육관인 장충체육관을 지을 때 국내 기술로는 감당하기 힘들어 필리핀 엔지니어의 도움을 받았을 정도”라고 보도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다. 장충체육관은 한국 1세대 건축가인 고(故) 김정수씨가 설계했으며 시공은 삼부토건이 맡은, 엄연히 한국 기술력으로 지어진 건축물이다. 한국건축역사학회 부회장을 맡고 있는 안창모 경기대 건축대학원 교수는 “장충체육관을 필리핀이 지어줬다는 근거 없는 소문이 인터넷에 떠돌아다니고 언론에서도 이를 보도하자 김정수 선생의 아들인 김석범씨가 직접 건축역사학회에 연락을 해 사실관계를 바로잡아달라고 요청한 적이 있다”고 설명했다. 흥미로운 점은 근거 없는 소문의 진원지 중 하나가 이명박 전 대통령이라는 사실이다. 이 전 대통령은 2011년 11월 필리핀을 방문해 장충체육관은 필리핀이 설계해서 지었으며 한국의 일류 건설회사들이 밑에서 하청을 했다고 얘기한 바 있다. 당시 이 전 대통령은 필리핀에 5억달러 무상원조를 약속하면서 이같이 발언했다. 안 교수는 이와 관련해 “당시 외교통상부·수출입은행 등 정부 관계자들이 건축역사학회에서 공식적으로 장충체육관은 우리 기술로 지어진 건축물이라는 입장을 내놓은 것을 보고 연락을 해왔다”며 “이 전 대통령이 필리핀에 무상원조를 약속한 근거 중 하나가 장충체육관을 필리핀이 지어준 걸로 알고 있었기 때문인데 나중에 사실관계를 확인하고 나서 정부관계자들이 상당히 난감해 했다”고 말했다.
●그때 그자리 있어 빛나는 건축물
리모델링 통해 보전…옛 흔적 곳곳에 간직
역사 뒤안길로 사라진 동대문운동장과 대조
장충체육관은 동대문운동장과 곧잘 비교되고는 한다. 두 건축물 모두 한국 스포츠사를 이야기함에 있어서 빠질 수 없는 장소인데다 하나는 리모델링을 통한 보존, 하나는 철거라는 전혀 다른 길을 걷게 됐기 때문이다.
동대문운동장을 철거하고 기존의 체육시설과는 성격이 전혀 다른 건축물을 지은 것에 대해서는 지금까지도 논란이 일고 있다. 어떤 건축물이라도 시간이 지나 낡게 되면 언젠가 한 번쯤 보존과 철거의 기로에 놓이게 된다.
안 교수는 “건축물을 보존할 것인지 철거할 것인지를 결정하는 일반적인 기준은 역사적인 가치”라며 “장충체육관은 건축물 자체의 아름다움보다는 그 장소에서 있었던 사건들이 의미가 있기 때문에 ‘그때 그 자리에 보존할 가치’가 있는 건축물”이라고 설명했다. 장충체육관은 2012년 5월부터 지난해 1월까지 약 2년6개월 동안 리모델링 작업을 실시했다. 장충체육관을 상징하는 돔을 뜯어내고 새로운 돔을 씌우고 관중들의 편의와 안전을 위해 객석 수를 줄이는 등 많은 변화가 있었지만 과거의 흔적을 보존하기 위해 애를 썼다. 당시 리모델링을 맡은 김복지 유선건축 건축소장은 “기존 건물의 역사성을 고려해 옛날 기억들을 떠올릴 수 있는 부분들을 남기려고 했다”며 “건물 내부에 기존 구조물을 일부러 노출시켜 새로 리모델링하는 부분과 구분했으며 기존 돔을 철거하면서 나온 철골 구조물을 체육관 외부에 따로 전시해 사람들이 옛날 기억들을 떠올릴 수 있도록 했다”고 말했다. /고병기기자 staytomorrow@sedaily.com 사진=송은석기자
<장충체육관 설계한 한국건축 1세대 故김정수>
국회의사당 설계 참여…한국 최초 건축설계사무소 만들기도
1919년생인 건축가 고(故) 김정수씨는 한국 건축 1세대로 꼽히는 김수근씨나 김중업씨보다 앞서 한국의 현대건축을 개척한 인물이다. ‘건축가 김정수 작품집’을 낸 안창모 경기대 건축대학원 교수는 “한국 현대건축사에 있어서 굉장히 중요한 인물”이라며 “일반적으로 건축가라고 하면 미적인 측면을 중요시하게 생각하기 때문에 김수근씨나 김중업씨를 중시 여기는 경향이 있는데 오히려 초기 건축가는 엔지니어로서의 이미지가 강했으며 김정수씨가 우리나라에서 그런 역할을 한 건축가”라고 평가했다. 그는 이어 “해방과 전쟁 후 복구 시기를 거치면서 한국에는 건축에 쓸 만한 새로운 재료들이 별로 없었다”며 “김정수씨는 1950~1960년대에 활동을 하면서 우리나라의 실정에 맞는 새로운 건축 재료와 구조가 무엇인지를 고민했으며 한국 현대건축 형성 초창기에 큰 공헌을 한 사람”이라고 말했다. 실제 김정수씨는 프리캐스트 공법을 직접 개발해 풍문여고 과학관에 적용했으며 공업기술 미학의 정수로 불리는 커튼월을 직접 만들어 우리나라 최초의 커튼월 건물인 명동 가톨릭회관에 적용하기도 했다. 안 교수는 “김정수씨는 당시 지금 당장 쓸 수 있는 재료를 개발하는 것은 물론 트렌디한 세계 건축의 미학을 도입하는 데도 앞장섰다”고 설명했다. 김정수씨는 장충체육관 외에도 여의도 국회의사당, 종로 YMCA회관, 연세대 학생회관, 성모병원 등을 설계했다. 한국 최초의 건축설계사무소인 ‘종합건축연구소’를 만들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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