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별난 취향을 가진 이들만 마시던 음료로 통했던 홍차. 그러나 이제 홍차는 국내에서도 거대 프렌차이즈부터 유서 깊은 티 하우스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게 즐길 수 있는 대중적인 음료가 됐다. ‘홍차 애호가의 보물상자’는 홍차에 대한 관심이 깊어져, 알고 마실 때 더 깊어지는 맛을 원하는 독자에게 훌륭한 가이드북이 될 것이다. 책은 국내와 상황이 크게 다르지 않았던 1980년대 초 미국에서 이 같은 역할을 했다. 와인 소믈리에였던 저자 제임스 노우드 프랫은 미국의 1세대 차 애호가이자 전문가다. 그는 시대에 뒤처진 채 잠들어 있는 미국의 차 시장을 깨운 새로운 ‘차 애호가’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대부분의 홍차에 관한 책에서 다뤄지는 홍차의 기원과 홍차를 둘러싼 서구열강의 무역 장악을 넘어서 책은 그 거대한 역사 속에서 소홀해지기 쉬운 주요 인물과 ‘차’라는 기호식품의 내밀한 역사에 주목한다. 특히 육우·센노 리큐·토머스 립턴·로버트 포천 같은 잘 알려진 인물뿐 아니라 최초로 본차이나를 만드는 데 성공한 유럽의 도공 요한 프리드리히 뵈트거, 미국에 처음으로 전통 중국차를 소개한 데번 샤와 로이 퐁처럼 잘 알려지지 않은 인물들에 대한 소개는 매우 흥미롭다. 또 차 시장이 세계적으로 성장하게 된 주요 계기에 대한 자세한 설명도 재미를 더한다. 이를테면 손으로 일일이 채엽하던 차를 어떻게 기계로 따서 대량으로 가공할 수 있게 됐는지, 어떻게 해서 캔·병 음료가 홍차 문화에 들어와 널리 퍼지게 됐는지, 세계의 여러 다원이 어째서 자신만의 개성을 드러내는 일련번호를 만들어내게 되었는지 등이다. 저자는 이처럼 다른 책에서 깊이 다뤄지지 않는 내용에도 상당한 분량을 할애했다.
또 신구 차 문화의 비교와 대조를 통해 차에 관한 안목을 넓혀준다. ‘서구 열강에 의한 동남아시아의 착취’ 등 제국주의의 야망으로 점철된 ‘차의 근대사’부터 대기업과 프리미엄 제조사들이 이끄는 현대사는 차 산업의 방향성과 미래까지 말이다. 또 책은 포트넘앤메이슨·립턴·트와이닝스·잭슨스 오브 피카딜리 같은 영미권의 유명 차 브랜드 뿐 아니라 새롭게 차 산업을 주도하고 있는 티바나나 아다지오 같은 회사에도 관심을 보인다. 이어 윈난·우지·다르질링·닐기리 같은 전통적 차 재배지의 새로운 대항마로 떠오르는 타이완과 아프리카, 라틴아메리카 등지의 다원들도 소개한다. 저자의 안내를 따라가다 보면 전통을 제대로 즐기는 방식뿐 아니라 그것이 각 문화권에서 혹은 산업 전반에서 어떻게 재해석되고 널리 퍼지는지도 한눈에 확인할 수 있다. 2만2,000원
/연승기자 yeonvic@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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