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가 미국 기업에 한 해 수조원의 특허 등 지적재산권 사용료를 지급하면서도 세금은 못 거두는 처지에 놓이면서 수조원의 세수 펑크가 가시화하고 있다.
상황이 이렇게 된 것은 1차적으로 지난 1976년 체결된 한미 조세조약 때문이다. 조약은 거래된 특허가 한국에서 ‘사용’됐을 경우에만 우리 국세청이 과세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 사용지 과세 규정이 문제가 되는 것은 특허 등 산업 재산권의 독특한 특성 때문이다. 산업 재산권은 각 나라에 ‘등록’해야 비로소 그 나라에서 보호받을 수 있는 권리가 된다. 따라서 한국에 등록된 특허에 대해서만 한국에서의 사용도 가능하다고 해석할 수 있다.
그런데 우리 기업이 미국에서 사들이는 특허 대부분은 한국에 등록되지 않은 미국 등 해외 특허다. 이 해석에 따르면 우리나라가 사용권을 사들인 해외 특허는 국내에서 제품 제조·판매 등에 써도 사용한 것은 아니라는 다소 이해할 수 없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반면 우리나라는 미국을 제외한 대부분 나라와의 조세조약에서 특허 사용료가 한국에서 ‘지급’되기만 하면 세금을 부과할 수 있게 규정했다. 이 경우 한국에서의 특허 등록 여부를 볼 필요도 없이 과세할 수 있다. 한 조세 전문 변호사는 “한미 조세조약에서 사용지 주의를 채택했고 등록을 사용과 결부시켜 볼 것인가 등에 대해 명확히 규정하지 않았기 때문에 논란의 불씨를 제공한 측면이 있다”고 지적했다.
이런 문제를 의식해 정부와 국회는 2009년 법인세법을 개정했다. 개정안은 ‘해외 특허도 국내에서 제조·판매 등에 사용된 경우 국내 등록 여부에 관계없이 국내에서 사용된 것으로 본다’는 규정을 새로 만들었다. 조세조약에서의 규정이 모호한 경우 국내 세법에 따라 과세할 수 있는 점을 노린 것이다. 국세청도 신설 규정에 따라 본격적으로 특허 사용료에 대해 세금을 거두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법원이 과세에 제동을 걸었다. 미국 기업들이 2009년 이후 “한국 과세당국이 특허수익에 대해 원천징수한 세금을 돌려달라”며 낸 7건의 소송에서 모두 미국의 손을 들어줬다. 대법원은 법인세법 개정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한미 조세조약을 우선시해야 한다는 견해를 유지하며 “특허권이 등록된 국가 외에선 이를 사용한다는 것을 관념할 수도 없다”고 밝혔다. 현재 7건 중 5건은 대법원 확정판결이 나왔으며 나머지 2건도 각각 1심과 2심에서 패소한 상태다. 올 6월9일에도 대법원은 미국 특허전문회사 ‘색슨이노베이션엘엘시’가 법인세 등 17억9,721만원을 돌려달라며 낸 소송에서 색슨의 손을 들어줬다. 7건의 패소에 따라 우리 과세당국이 토해내야 할 세금만 760억원에 이른다.
특허 사용료발(發) 세수 펑크 사태를 해결하려면 근본적으로는 한미 조세조약을 고쳐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미 조세조약은 체결된 지 40년이 넘어 개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지만 한 번도 고쳐지지 않았다. 우리 정부는 1999년부터 다섯 차례에 걸쳐 미국과 개정 협상을 했지만 매번 소득 없이 끝났다. 미국의 요구사항과 우리 주장이 팽팽히 맞서 합의점을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특허 사용료 과세 문제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있으며 다른 현안들을 충분히 검토한 뒤 조약 개정에 나설 것”이라고 밝혔다.
당장 조세조약을 바꾸는 게 어렵다면 국제조세조정에 관한 법률 등 국내법에 대한 추가 개정도 추진할 필요가 있다. 이상우 김앤장법률사무소 변호사는 “국제조세조정법은 ‘외국 법인의 국내 원천소득 판단은 법인세법에도 불구하고 조세조약이 우선해 적용된다’고 규정하는데 이 역시 특허 사용료 과세를 어렵게 하는 요소”라고 말했다.
법원이 전원합의체 등을 통해 진취적인 판결을 내놓아야 한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한미 조세조약의 ‘사용’ 개념이 모호해 개정된 법인세법에 따라 과세할 수 있다고 볼 여지가 충분하므로 ‘조약 우선’ ‘특허 등록과 사용의 동일시’를 고집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특히 미국조차 필요에 따라 등록과 사용을 분리해서 적용하는 경우가 많다는 점을 고려하면 법원 판결은 지나치게 경직됐다는 지적이다. 실제로 미국은 ‘미국에서만 등록된 특허’가 해외에서 제품 제조·판매에 사용된 경우 적극 특허 침해 소송을 제기하고 있다. ‘등록해야만 사용할 수 있다’는 원칙을 고수하면 미국 특허를 다른 나라에서 사용했더라도 특허 침해가 성립할 수 없는데도 자국 기술 보호 차원에서 이런 소송을 걸고 있는 것이다. 일례로 우리나라에 세금 소송을 낸 색슨도 LG전자가 자사의 미국 특허권을 침해했다는 이유로 LG 한국 본사, 미국 회사에 모두 특허 침해 소송을 제기했다.
미국 기업이 한국 기업과 특허권 양도계약을 맺을 때 한국에 원천징수될 세금을 상정하고 계약금액을 정하는 경우도 많다. 미국조차 특허수익에 대해 한국에서 과세당할 수 있다고 보는데 한국 법원은 국내 과세권을 부정하고 있는 셈이다.
박종수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법원 판결은 다국적 기업에 대한 과세를 강화하려는 글로벌 트렌드와도 맞지 않는 측면이 있다”며 “소송 과정에서 새로운 법적 논리를 계속 개발하는 등 노력을 통해 판례를 바꿀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서민준기자 morandol@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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