칸트의 ‘정언명법’은 인간을 목적 자체로 대해야 한다는 도덕철학의 기본으로 인간이 절대적인 이성을 지닌 존재임을 강조한다. 윤리학의 기본이기도 한 정언명법은 단어 자체로도 어렵게 느껴지기 쉽다. 특히 철학이나 윤리학을 배우지 않은 학생들에게는 지루하고 따분할 수 밖에 없다. 하지만 영화나 애니메이션으로 접근하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19일 오전 경기기계공업고등학교 시청각실에서는 70여명의 학생들이 이창후(사진) 교수의 고인돌 강좌 ‘영화로 읽는 윤리학-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참석해 칸트의 정언명법을 공부했다. 고인돌(고전 인문학이 돌아오다)은 서울시교육청과 본지 부설 백상경제연구원이 공동으로 운영하는 고전 인문학 아카데미로 올해 4년째 운영하고 있다. 이번 강좌는 노원평생학습관의 지역학교 지원사업의 일환으로 준비됐다.
이 교수는 ‘겨울왕국’과 ‘유령신부’ 등 2편의 애니메이션으로 어려운 철학 명제를 간단하게 풀어냈다. 유령신부는 생전에 신랑에게 죽임을 당한 헬레나가 결혼을 앞둔 소심한 예비신랑 빅터를 지하세계로 데려가 자신의 꿈이었던 결혼을 단행하려 한다. 산 자와 죽은 자의 결혼식은 과연 이루어질까. 헬레나는 자신의 꿈을 실현하기 위해 산 자를 죽게 하는 것은 올바르지 않다고 판단해 꿈을 접는다. “정언명법은 어려운 명제이지만 유령신부의 결혼식에서 쉽게 이해할 수 있어요. 칸트는 ‘네 행위의 규칙이 보편타당하기를 욕구할 수 있는 그런 방식으로 행위하라’고 했는데 이 말은 누구나 해야 하는 방식으로 행위하라는 의미입니다. 유령신부는 생전의 꿈이었던 결혼식에 대한 로망을 실현하고자 살아있는 빅터를 죽음으로 이끌려고 하지만 결국 포기하지요. 유령신부의 판단이 바로 정언명법을 잘 설명해주고 있어요.” 이 교수는 애니메이션을 통해 목적론적 윤리설과 규칙론적 윤리설의 차이에 대해서도 설명했다.
학기 말 여유기를 보다 활기차게 보내기 위해 준비한 이번 강좌에서 학생들은 윤리학과 철학에 관심을 보였다. 이 학교 신소재과 2학년 박명인 학생은 “재미로만 봤던 애니메이션에 함축적인 내용을 자세하게 알 수 있는 시간이었다”면서 “수업시간에는 선생님이 질문을 하고 곧바로 답도 알려주시는데, 오늘 강의에서는 질문을 던지고 생각할 시간을 주는 방식이 신선했다. 생각이라는 것을 해 본 시간이었다”고 말했다. 자신의 삶에 대해 생각하는 기회가 됐다는 전기제어과 3학년 황서현 학생은 “윤리학은 초등학교 때 도덕을 끝으로 배운 적이 없는 생소하고 낯선 학문인데 영화로 설명을 들으니 쉽게 이해가 됐다”며 “특히 왜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고 그에 대한 답을 구하는 과정을 통해 상대를 설득하라는 교수님의 생각법은 앞으로 취업을 위한 면접을 준비할 때 적용해 보고 싶다”고 말했다.
한편, 서울시교육청 도서관 21곳과 서울시 중고등학교 30여 곳에서 12월까지 잇따라 열리는 고인돌 강좌의 세부 프로그램은 서울시교육청 평생교육포털 에버러닝(everlearning.sen.go.kr)을 참고하면 된다. 강좌는 무료이며, 신청은 해당 도서관으로 문의하면 된다./장선화 백상경제연구원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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