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9월28일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김영란법)’ 시행을 앞두고 기업의 대관·홍보 업무 담당자, 정부 대변인실 등 관련 조직들은 ‘일단 조심하고 보자’는 분위기다. 김영란법이 규제하는 식사 접대, 선물 증정과 관련된 업종을 중심으로 소비 수요가 줄고 경기침체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현실화할 조짐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김영란법의 기준과 개념이 모호해 범법자를 양산할 우려가 있다는 지적이 빗발치자 국민권익위원회가 지난 22일 ‘청탁금지법 해설서’를 공개했지만 여전히 김영란법의 위반 기준 중 하나인 ‘직무관련성’, 처벌 예외 사유인 ‘사회상규’ 등의 개념은 명확히 정리되지 않고 있다. 이와 관련해 한 정부 대변인실 관계자는 “법 시행 초기에는 ‘본보기’가 될 수 있는 만큼 일단 적발되지 않도록 조심하기로 했다”며 “특히 골프 약속, 술자리가 있는 저녁 모임은 가급적 피하게 될 것 같다”고 전했다.
국내 대표 경제단체인 대한상공회의소의 박용만 회장은 20일 기자간담회에서 “소나기를 피하자는 식으로 반응을 하게 되면 김영란법 하고 상관없는 분들까지도 소비 위축으로 이어지고 그렇게 되면 경제에 상당히 피해가 올 것”이라며 “국민들 대다수가 (김영란법에 대해) 잘 모르고 불안해 하고 이러면 일단 안 쓰고 보자, 만나지 말자, 다 피하고 보자 그럴 수 있다”고 지적했다.
김영란법의 적용 대상이 최근 들어 잇달아 추가로 밝혀지고 있다는 사실 역시 김영란법의 파급효과가 예상보다 클 수 있다는 지적을 뒷받침해주는 대목이다. 최근 권익위의 청탁금지법 해설서 공개를 계기로 공직과 거리가 멀어 보이는 문화·예술·스포츠 직군도 김영란법 적용 대상에 포함될 수 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권익위는 청탁금지법 해설서에서 헌법기관, 중앙행정기관, 공직 유관단체, 유치원, 초중고 및 국립·공립·사립대, 학교법인, 언론사에 이르는 4만여개 적용 대상 기관을 공개하면서 “공직 유관단체와 근로계약을 체결한 근로자는 근로계약의 형태 및 수행직무를 불문하고 그 직원에 해당한다”고 설명했다. 이 같은 기준에 따르면 국립극단·국립오페라단·안양FC축구단 등의 단체 소속 무용수·연주자·축구선수도 모두 김영란법 적용 대상에 포함된다.
공연 초대권도 ‘금품’에 포함된다는 사실과 관련해서도 문화예술 공연 분야의 피해 우려가 제기된다. 뮤지컬·오페라 등 문화예술 공연 티켓 판매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기업 단체구매가 줄어들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김영란법 적용 대상에 언론사가 포함되는 원칙을 권익위가 기업·시민단체 등이 발간하는 사외보에도 적용하기로 해 관련 업종의 피해도 예상된다. 사외보를 발간 중인 한 대기업 관계자는 “아직 헌법재판소 결정이 나오지 않았고 정치권의 법 개정 논의 등 변수가 많아 사외보 폐간 여부를 결정하지 않았다”면서도 “기업들이 대체로 사외보 제작은 외주업체에 맡기고 있기 때문에 기업들의 사외보 폐간이 이어지면 외주업체뿐 아니라 인쇄업체들의 일감도 줄어들게 되지 않겠느냐”고 내다봤다.
한편 명절 고가 선물시장이 줄어들고 고가 외식시장이 축소될 경우 2차 파장은 더욱 크게 시장을 위협할 수 있다. 그동안 국내 농수축산품은 고품질·고가 위주의 품질경쟁을 지향하며 수입산의 물량공세에 맞서왔다. 소비자들은 소비 침체에도 웰빙 트렌드에 주목하고 지갑을 열었다. 이런 가운데 백화점 및 외식 업계 등이 고가 식료품의 대량구매를 멈출 경우 해당 산업의 기반 자체가 무너질 수 있다고 업계는 우려한다. 실제 김영란법이 시행될 경우 주요 고가 선물인 한우·굴비는 명절 선물시장에서 아예 퇴출될 것이라는 게 중론이다. /김희원·김영필·박경훈기자 socool@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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