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일 오후 런던시장에서 엔화가치는 장중 달러당 99.54엔까지 올라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Brexit) 결정 직후 시장이 쇼크 상태에 빠졌던 6월24일 이후 최저치를 기록했다. 장중 100엔이 붕괴된 것은 지난달 8일 이후 한달여 만으로 엔화는 브렉시트 이래 벌써 세 번이나 달러당 90엔대의 영역을 넘나든 셈이다.
시장에서는 거래가 한산한 여름 휴가철을 틈탄 헤지펀드의 엔 매수주문이 기습적인 엔고를 유도했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이후 엔화가치는 윌리엄 더들리 뉴욕 연방준비은행 총재의 9월 미 금리 인상 가능성 시사 발언과 일본 정부의 구두개입에 힘입어 17일 도쿄외환시장에서 달러당 100엔대 후반까지 떨어졌다. 이날 아사카와 마사쓰구 재무성 재무관은 “(외환시장의) 투기적 움직임을 주시하고 있다”며 “심한 변동이 있다면 대응하지 않을 수 없다”고 강조했다.
시장에서는 정부 구두개입이 올 들어 꾸준히 이어지는 엔고 흐름을 저지하기에 이미 역부족이라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금리 인상 연기와 중국의 경기불안, 브렉시트 등 해외 요인들이 마이너스 금리 도입이라는 ‘극약처방’을 무용지물로 만들 정도의 강한 동력으로 엔화강세를 이끌고 있는 만큼 앞으로도 엔고 지속이 예상된다는 것이다. 가라가마 다이스케 미즈호은행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니혼게이자이신문에 “연준이 (9월에) 금리를 올린다고 해도 지금의 미국 경제는 강달러를 견딜 수 있을 정도로 강하지 않다”며 “(엔·달러 환율은) 9월 중 달러당 100엔선을 밑도는 수준(엔고)으로 정착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여기에 BOJ의 시장통제 능력 상실에 대한 실망감도 엔화강세를 꾸준히 부추기는 요인이다. 지난달 금융정책결정회의에서 미미한 수준의 추가 금융완화 정책으로 오히려 엔화강세를 초래했던 BOJ는 9월 종전 완화정책의 전반적인 재검토를 예고한 바 있다. 하지만 BOJ가 내놓을 대안이 엔화가치를 다시 끌어내릴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니혼게이자이는 “아베노믹스와 금융완화 정책 장기화에 대비해 정책의 지속성을 높이는 데 초점을 맞출 가능성이 있다”며 현재 연간 80조엔인 국채매입 규모를 70조~90조엔으로 조정하는 방안 등이 유력시된다고 전했다. 하지만 이 경우 시장에서 BOJ가 양적완화 규모를 축소한 것으로 받아들여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통화정책이 한계에 달했다면 BOJ에 남은 방법은 하나, 즉 직접적인 외환시장 개입이다. 다만 시장에서는 엔화가 달러당 90~95엔 수준으로 오르기 전까지 BOJ가 직접개입을 검토하지 않을 것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BOJ는 2011년 14조3,000억엔을 매도하는 시장개입을 단행한 적이 있지만 당시 엔화가치는 달러당 75엔대로 지금과 비교가 안 될 만큼 높은 수준이었다. 런던 소재 미즈호은행의 닐 존슨 헤지펀드 판매 대표는 블룸버그통신에 “엔화가 달러당 90엔 수준에 접근할 때까지는 구두개입 강도가 점차 높아지는 선에 그칠 것”이라고 내다봤다.
덴마크 노르데아마켓의 아그렐리야 아우굴리테 전략가는 “엔화약세를 유도하려는 BOJ의 시도는 비참하게 실패했다”며 장기적으로 엔화가치가 달러당 95엔까지 오를 것으로 예상했다. /신경립기자 klsin@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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