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메뉴

검색
팝업창 닫기
이메일보내기

[시로 여는 수요일] 노거수老巨樹

- 박노해 作





나는 이제 속도 없다

빛나는 나이테도 없다

안팎을 들락이는 바람 소리뿐

어느 하루 나 쓰러진다고

기뻐하지 마라

얼마나 많은 해와 달이

여기 등 기대앉은 사람들의

한숨과 이야기들이

나와 함께 사라지는 것이냐

어느 하루 나 쓰러진다고

슬퍼하지 마라

이 한 몸 사라진 텅 빈 자리에

시원한 하늘이 활짝 트이고

환한 여백이 열리지 않느냐

온몸으로 지켜온 내 빈자리에

이슬이 내리고 햇살이 내리고

새 노래를 부르는 아이들이 걸어올 것이니

수백 년 살아온 노거수의 가슴이 텅 비었구나. 평생 쓴 나이테 자서전을 바람의 도서관에 기증하였구나. 항상 높은 곳을 연모하였으나 이제 낮은 곳에 다다를 준비가 되었구나. 가지를 떠돌이새들의 게스트하우스로 내어주고, 열매로 무상급식 일삼더니 제 몸을 통째로 땅의 제단에 내놓을 참이구나. 어느 하루 당신이 쓰러지면 슬퍼하겠다. 하나의 세계가 무너지는 것이므로. 어느 하루 당신이 쓰러지면 기뻐하겠다. 또 하나의 세계가 탄생하는 것이므로. <시인 반칠환>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주소 : 서울특별시 종로구 율곡로 6 트윈트리타워 B동 14~16층 대표전화 : 02) 724-8600
상호 : 서울경제신문사업자번호 : 208-81-10310대표자 : 손동영등록번호 : 서울 가 00224등록일자 : 1988.05.13
인터넷신문 등록번호 : 서울 아04065 등록일자 : 2016.04.26발행일자 : 2016.04.01발행 ·편집인 : 손동영청소년보호책임자 : 신한수
서울경제의 모든 콘텐트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복사·배포 등은 법적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Copyright ⓒ Sedaily, All right reserved

서울경제를 팔로우하세요!

서울경제신문

텔레그램 뉴스채널

서경 마켓시그널

헬로홈즈

미미상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