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소기업 영업팀장으로 일하는 이동철(45·가명)씨는 둘째 아이 문제로 고민에 잠겼다. 자신을 따라 1년 동안 골프연습장을 따라 다닌 초등학교 6학년 딸이 최근 리우데자네이루올림픽에서 박인비가 금메달을 따낸 모습을 본 뒤 골프선수가 되겠다고 ‘선언’했기 때문이다. 제대로 엘리트 코스를 밟으려면 연간 수천만원의 경비가 든다는 사실을 아는 아빠는 걱정부터 앞섰다.
‘박인비 효과’로 골프 열기가 어느 때보다 뜨겁다. 일부 골프연습장에서는 자녀의 레슨에 관한 문의가 늘고 있다고도 한다. 박세리의 1998년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개척을 보며 골프채를 잡은 ‘세리키즈’ 세대처럼 ‘인비키즈’ 세대가 형성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남녀노소 온 국민이 관심을 갖는 올림픽 무대였기에 파급력은 일반 골프대회보다 훨씬 클 것이다.
골프계로서는 크게 환영할 일이다. 박세리와 세리키즈 세대인 박인비, 신지애, 이보미, 최나연 등의 활약으로 증가일로에 있던 국내 유소년 골프선수는 2010년을 정점으로 거의 매년 감소 추세를 보이고 있다. 30일 대한골프협회에 따르면 2010년 506명이었던 초등학교 등록 선수는 올해 332명으로 줄었다. 6년 사이에 34.4% 감소한 것이다. 특히 이 기간 남학생은 319명에서 175명으로 45.2%나 줄어 거의 절반이 됐다. 중학교 남학생 선수는 50.7%, 고교 남학생 선수는 47.3%나 줄어 남자의 감소 폭이 훨씬 두드러졌다. 국내 남자 프로골프 투어 침체의 영향으로 보인다. 남자만큼 감소 폭이 크지 않지만 경쟁력이 더 있는 여학생 선수의 증가세도 꺾였다.
유소년 골프선수가 줄어드는 현상은 국내 경제 상황과 연관이 있다. 장기적인 경기 침체로 성공을 꿈꾸며 자녀를 골프에 입문시키는 일이 힘들어졌다는 얘기다. 보다 더 직접적인 이유는 골프비용이 내려가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한 번에 20만원 이상 드는 필드 라운드 경비는 엄청난 부담일 수밖에 없다. 빚을 내서 골프를 가르치는 경우도 어렵잖게 찾을 수 있는 게 현실이다.
국내에서 골프 가르치기는 매우 힘들다. 과거에 비해 골프장은 크게 늘어났지만 높은 세율과 고비용 구조 때문에 이용료는 요지부동이다. 유소년도 어른과 같은 금액을 내야 한다. 문화·예술·체육 시설 중 어린이 이용요금 할인이 없는 곳은 골프장뿐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번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딴 박인비가 어린 시절 미국으로 유학을 간 것도, 은메달리스트 리디아 고가 뉴질랜드로 이민을 떠난 것도 골프 하기 좋은 환경을 찾기 위한 선택이었다. 골프장의 세금을 당장에 낮출 수 없다면 유소년들에게라도 할인해주고 세금을 환급하는 등의 정책은 빠른 시일 내에 시행할 수 있을 듯싶다. 유소년 우대는 기왕에 성장한 골프산업의 장래 고객층 확보라는 측면에서도 의미가 있다. 한국을 세계에 널리 알리는 ‘골프한류’의 원천이 고비용과 부모의 등골의 산물이 돼선 지속적인 발전을 기대할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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