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세균 국회의장이 1일 20대 정기국회 개원연설을 통해 야권에 치우친 주장을 쏟아내자 새누리당은 이에 강력 반발하며 의사일정을 전면 보이콧하고 나섰다. 의장이 작심하고 일으킨 ‘난(亂)’에 정기국회가 첫날부터 파행을 빚으면서 앞으로의 정국도 급속도로 얼어붙을 것으로 전망된다.
정 의장은 이날 정기국회 개회사에서 “우병우 청와대 민정수석과 관련한 논란은 참으로 부끄럽고 민망한 일”이라며 “고위공직자가 특권으로 법의 단죄를 회피하려는 시도는 용인될 수 없다. 고위공직자 비리 전담 특별수사기관 신설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 설치는 야권이 이번 정기국회에서 처리를 추진하고 있는 핵심 현안이다.
정 의장은 여야 간 입장이 첨예하게 갈리고 있는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 배치와 관련해서도 야당 편에 섰다. 그는 “정부의 태도는 우리 주도의 북핵 대응 측면에서 동의하기 어렵다”며 “사드 배치의 불가피성을 떠나 우리 내부에서 소통이 전혀 없었고 그 결과로 국론은 분열되고 국민은 혼란스러워한다”고 지적했다.
정권의 운명이 걸린 우 수석의 거취 문제와 예민한 안보 현안에 대해 중립적 위치의 의장이 작심하고 야당의 손을 들어주자 새누리당 의원들은 항의의 표시로 고성을 지르며 집단 퇴장했다. 개회식 직후로 예정됐던 여야 의원 전원의 기념 단체사진 촬영도 거부했다.
정진석 새누리당 원내대표는 개회식 후 곧바로 긴급 의원총회를 소집해 “중립적 위치에서 의사진행을 해야 할 의장이 야당의 당론을 대변하듯이 이야기할 수 있느냐”며 “도저히 묵과할 수 없다. 의장의 온당한 사과와 후속조치가 마련되지 않는 한 20대 국회의 모든 의사일정을 거부하겠다”고 언성을 높였다. 이정현 대표는 “국가와 국민을 위한 대장정에 나서야 하는 첫날, 질서를 깨는 국회의장의 행태와 언동을 보면서 기가 막힌다”며 “중증의 대권병이 아니고서는 헌정 사상 초유의 이러한 도발은 있을 수가 없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조원진 최고위원은 “70년간 (이어진) 의회 민주주의에 대한 폭거”라고 주장했고 김정재 원내대변인은 “정 의장은 오늘로 국회의장 자격을 상실했다”고 맹비난했다. 새누리당은 이날 사퇴촉구결의안을 제출하는 한편 정 의장을 국회 윤리위원회에 제소하고 의장이 정치적 중립 의무를 위반할 경우 징계할 수 있는 규정을 담은 국회법 개정안도 제출하기로 했다.
새누리당 지도부는 이날 오후 2차 의총을 마친 후 의장실을 직접 방문, 항의의 뜻을 전했다. 정 의장은 오후 늦게 발표한 입장문에서 “여당 지도부가 방문한 자리에서 어떤 정치적 의도 없이 국민의 뜻을 받들어 현안에 대한 입장을 사심 없이 얘기했다는 점을 충분히 설명했다”며 사실상 사과 요구를 거부했다. 이에 정 원내대표는 “추경 등 시급한 안건을 내일(2일) 오전 중으로라도 처리할 수 있도록 부의장에게 사회권을 넘겨라”고 맞섰다.
더불어민주당은 논평에서 “정 의장의 개회사가 주는 울림에 크게 공감한다”며 “산적한 과제를 내팽개친 새누리당 의원들이 한심스럽다. ‘이제 본격적으로 야당 연습하느냐’는 힐난마저 있는 마당”이라고 정 의장을 두둔했다.
/나윤석·박효정기자 nagija@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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