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야(巨野)가 지난 24일 새벽 김재수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의 해임 건의안을 단독 처리하면서 정국이 급속도로 얼어붙고 있다. 당장 26일부터 열릴 예정인 국정감사가 새누리당의 ‘보이콧’ 선언으로 파행 위기에 내몰린 가운데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 배치와 미르재단 의혹 등 갖가지 현안을 놓고도 여야는 극한 대치를 이어갈 것으로 보인다. 4·13 총선 후 여야가 모토로 내세웠던 ‘협치(協治)’가 정기국회 개원 후 한 달도 채 안 된 시점에 산산조각난 셈이다.
더구나 여당이 새누리당은 이번 사태 수습을 위해 정세균 국회의장의 사퇴와 야당의 사과를 요구하고 있어 접점을 찾기가 더 어려워졌다는 분석이다. 염동열 새누리당 수석대변인은 25일 “국회의장의 위법과 중립성 훼손으로 국회와 민의가 파괴되는 엄중한 사태를 맞이한 만큼 정상적으로 국회 일정을 진행할 수 없는 상황”이라며 “이제 ‘냉동국회’가 돼버렸다”고 말했다. 그는 “정세균 의장의 사퇴와 더불어민주당의 사과 없이는 쉽게 녹아내릴 것 같지 않다”며 국회 보이콧 철회를 위해 정 의장 사퇴와 야당의 사과가 전제돼야 한다는 점을 거듭 강조했다. 청와대도 이날 “청문회에서 김 장관에 제기된 의혹들이 해소된 만큼 해임 건의안을 받아들이지 않기로 했다”며 수용 불가 입장을 공식화했다.
반면 야당은 사과 거부는 물론 박근혜 대통령이 김 장관의 해임 건의를 수용하라고 오히려 역공에 나섰다. 우상호 더민주 원내대표는 이날 기자간담회를 열고 “국회에서 통과된 해임 건의안은 이번이 여섯 번째인데 받아들여지지 않은 적이 없다”며 “독재정권 시절인 박정희 정권 때도 받아들였다”고 청와대를 압박했다. 정세균 의장 역시 국회사무처가 배포한 보도자료를 통해 “국회법이 정한 절차에 따라 국회의장이 각 교섭단체 대표의원과의 협의를 거쳐 24일 본회의를 개의했다”고 밝혀 여당의 사퇴 요구를 일축했다.
여야가 이처럼 한 치의 양보 없이 팽팽한 평행선만 달리면서 당장 26일부터 시작되는 국정감사가 ‘반쪽 국감’으로 전락할 상황이다. 우상호 원내대표는 “야 3당은 여당이 국감을 보이콧해도 예정된 일정을 정상적으로 진행하기로 합의했다”며 강행 의지를 밝혔다. 박지원 국민의당 비상대책위원장 겸 원내대표도 “새누리당이 국감을 보이콧하는 것은 집권여당으로서 국회의 권능을 스스로 포기하는 있을 수 없는 책임회피”라며 “여당 소속 상임위원장이(국감을) 개회하지 않으면 사회권을 국회법에 따라 요구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국감에서는 미르·K스포츠재단 설립 허가 및 대기업 모금 의혹이 뜨거운 쟁점으로 부상할 것으로 전망된다. 더민주와 국민의당이 면책특권이 보장된 상임위원회에서 의혹을 제기할 경우 역대 최악의 폭로전으로 치달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야당의 엄포에도 불구하고 새누리당이 ‘오만한 거야’라는 프레임으로 총공세를 펼친다면 야당 역시 여론 악화 등을 우려해 강공 일변도로 나서기는 힘들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새누리당은 이날 원내부대표단 회의와 두 차례 최고위원 회의(오후2시·10시)를 잇따라 열고 향후 대응 방안을 집중 논의했다. 새누리당은 정세균 의장을 ‘직권남용 및 권리행사 방해죄’로 검찰에 형사고발하고 직무정지도 추진하는 등 전방위 압박에 나섰다. 김현아 대변인은 “사퇴촉구 결의안 제출, 직무정지 가처분 신청, 권한쟁의 심판 청구 등 모든 수단을 동원해 법적·윤리적 책임을 물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재수 장관의 해임 건의안 파문이 가라앉는다 해도 여야가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앙금을 남겼다는 점에서 내년 대선 정국과 맞물려 정국은 더 소용돌이칠 것으로 전망된다. 우병우 청와대 민정수석의 거취, 사드 배치, 한진해운 사태, 조선산업 구조조정 등 여야가 첨예한 이견을 보이는 현안해결이 그야말로 ‘첩첩산중’에 놓이게 될 것으로 보인다. 당정이 처리를 강력히 원하는 노동개혁과 서비스발전기본법 등의 경제활성화법안을 놓고도 여야는 대격돌을 벌일 것으로 예상된다. 여야가 20대 국회 초반에 한목소리로 민생을 얘기했지만 험난한 정국 속에서 민생은 그야말로 헌신짝처럼 내팽개쳐지게 됐다는 지적이다.
/나윤석기자 nagija@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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