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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요일 아침에] 4차 산업혁명의 열쇠는 수요 창출이다

정상범 논설위원

시장 '콘텐츠' 강화 요구하는데

정부 관심은 하드웨어에만 쏠려

단기성과에 함몰된 구태 벗어나

소비로 이어질 부가가치 만들길

정상범 논설위원




요즘 가상현실(VR) 업계는 넘쳐나는 정책자금으로 때아닌 속앓이를 하고 있다. 정부가 신성장동력으로 키우겠다며 자금을 집중적으로 쏟아붓고 있지만 사람들이 보고 즐길 만한 VR용 콘텐츠를 개발할 만한 곳이 별로 없는 탓이다. 심지어 통장에 자금이 들어오면 사용처를 찾느라 겁부터 덜컥 난다는 하소연도 나오고 있다. 그런데도 정책 방향은 여전히 초경량 VR 기기를 개발하고 어지럼증이나 피로감을 개선하는 하드웨어 중심적 사고에만 머물러 있으니 헛돈을 쓴다는 얘기가 나오게 마련이다.

VR나 인공지능 등 제4차 산업혁명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뜨겁다. 특히 정부 부처들은 수시로 신성장동력회의를 열고 화려한 청사진을 내놓기 바쁘다. 최근에도 미래창조과학부는 VR를 국가전략프로젝트로 선정하고 4,500억원을 투자하겠다고 선언했고 산업통상자원부는 로봇산업에 5,000억원을 들여 스마트 공장을 구현하겠다고 나섰다. 정부 주도의 연구개발(R&D) 관행을 벗어나겠다면서 기업들이 아이디어를 가져오면 지원하는 방식으로 바꿨다지만 영 신통치 않기는 마찬가지다. 속내를 뜯어보면 소리만 요란할 뿐 실효성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게 업계의 중론이다. 그저 새로운 것, 유행만 좇아 돈을 쏟아붓는 구태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셈이다.

이런 VR 열풍을 보노라면 몇 해 전 산업계를 휩쓸었던 3차원(3D) 기술을 떠올리게 된다. 지난 2009년 영화 ‘아바타’ 열풍을 타고 3D 산업이 주목받자 정보기술(IT) 업체들은 앞다퉈 신사업에 뛰어들었다. 당시 정부도 8,000억원을 투자해 미래산업으로 키우겠다고 나섰다. 하지만 사람들의 눈길을 사로잡는 3D 콘텐츠를 확보하지 못한데다 신기술이 속속 등장하면서 결국 뒷전으로 밀려나고 말았다. 쓸만한 콘텐츠 없이 하드웨어 덩치만 키우는 산업정책이 갖는 구조적 한계일 것이다.



아무리 뛰어난 기술을 개발하더라도 현장에서 이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수요가 뒷받침되지 않으면 결국 단발성 이벤트에 머무를 수밖에 없다. 반면에 기존 산업이라도 신기술을 입히고 소비 욕구를 제대로 읽어낸다면 얼마든지 신성장동력으로 키울 수 있다. 이런 측면에서 최근 만난 한 자전거업체 사장의 이야기는 귀담아들을 만하다. 그는 한국이 자전거 인구 1,000만명 시대에 돌입했다지만 국산 자전거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보기 힘들다고 안타까워했다. 정부가 세계 5대 자전거 강국을 만들겠다고 말로만 떠들지 말고 베어링 같은 국산 부품 개발에 조금이라도 신경을 썼다면 이 지경에 몰리지 않았을 것이라며 아쉬움을 드러냈다. 정보통신기술(ICT) 분야의 융합기술을 적용한 스마트 제품까지 개발되는 등 유망산업으로 뜨고 있는 자전거 시장을 눈뜨고 놓친 것이야말로 아쉬운 대목이다. 이제는 사소하고 단순한 것이라도 시장의 소비 욕구를 정확히 읽어내고 잠재된 수요를 창출하겠다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한 때다.

한국의 4차 산업혁명이 지나치게 공급자 측면에서 외연을 늘리는 데 초점이 맞춰져 정작 현장의 수요를 놓치고 있다는 것은 뼈아픈 지적이 아닐 수 없다. 이제는 과거와 달리 물건을 만들기만 하면 무조건 팔리는 시대는 끝났다. 신산업은 무엇보다 수요를 일으키는 게 핵심이다. 4차 산업혁명을 ‘수요의 경제’나 ‘유통의 경제’라고 일컫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지금은 소비자의 다양한 수요에 맞춰 고부가가치 제품을 제공하는 ‘매스 커스터마이제이션(mass customization)의 시대’다. 이는 독일 정부가 제창하는 ‘인더스트리 4.0’의 핵심 개념이기도 하다. 정부나 연구기관이 지금처럼 성과주의에 급급해 시장과 따로 노는 거대 담론에만 매달려서는 우리 산업의 밝은 미래를 담보하기 힘들 것이다.

드론이니 자율주행차니 하는 신기술에만 목을 매는 정책 당국자들이라면 조선시대 인물들의 가상 대화를 메신저 방식으로 풀어낸 ‘조선왕조실톡’을 한 번 읽어보기를 권한다. 무엇이 진정한 창조경제인가를 실감하면서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올 것이다. 정상범 논설위원 ssang@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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