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육상선수가 되고 싶었다. 최고를 바랐지만 늘 앞서 가는 누군가의 뒤통수를 보고 달려야 했다. 포기하고 스탠퍼드 경영대학원에 진학했다. 사업에 대한 생각은 막연했으나 선수 시절 얻은 운동화에 대한 관심은 확고했다. 미국의 스포츠용품 브랜드이자 세계 최고의 브랜드인 나이키를 창업한 필 나이트가 보낸 불안한 20대 시절 이야기다. 그는 1962년 배낭여행을 떠나며 다짐한다.
“세상 사람들이 미쳤다고 말하더라도 신경 쓰지 말자. 멈추지 않고 계속 가는 거다. …그곳에 도달할 때까지는 어디인지도 깊이 생각하지 말자. 어떤 일이 닥치더라도 멈추지 말자.”
최고의 마케팅 전략을 구사했을 것만 같은 창업자 필 나이트는 의외로 즉흥적이고 본능적이었다. 사업 시작부터 기업명을 짓고 브랜딩하는 과정도 그랬다. 막무가내로 떠난 배낭여행 중에 그는 일본 운동화 회사 오니츠카(현재의 아식스)를 무작정 찾아가 미국 판매권을 달라고 설득했다. 설득보다 ‘떼쓰기’에 가까웠다. 당시 오니츠카 수출 담당자가 회사이름을 묻자 고등학교 시절 육상대회에 입상해서 받은, 최고의 영예를 뜻하는 ‘블루 리본’이라고 얼결에 답한다. 육상선수다운 순발력이었고 이것이 나이키의 전신(前身)이 됐다. 운좋게도 마침 미국 진출을 준비하던 오니츠카는 그에게 미국 서부지역 독점판매권을 맡겼다.
새책 ‘슈독’은 1964년 나이키를 창업해 2004년까지 최고경영자를 지낸 필 나이트의 첫 자서전이다. 책 제목인 ‘슈독(Shoe Dog)’은 신발 연구에 미친 사람을 뜻한다.
1971년 런칭한 ‘나이키’라는 브랜드도 고육지책이었다. 신발을 공급해주던 오니츠카와의 관계가 틀어져 생존을 위해 자체 브랜드를 만들어야 했기 때문이다. 예전에 알던 젊은 화가에게 고작 35달러의 디자인 비용을 주고 완성한 것이 ‘스우시(Swoosh)’라 불리는 지금의 나이키 로고다. 당시 나이트는 “동적인 느낌을 표현해 달라”는 단 하나의 요구사항만 내놓았다. 이름짓기는 더욱 힘들었다. 어감과 의미를 고려해 이것저것 붙이다보니 ‘팰콘벵골디멘션식스’ 같은 우스꽝스러운 이름이 뒤섞여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고민하는 그에게 동료가 꿈에서 봤다며 ‘나이키(NIKE)’까지 얹었다.
“상징적인 브랜드들은 이름이 짧다고 했다. 그리고 브랜드 이름에 K나 X가 들어가 센소리가 나면 오래 기억된다. 일리 있었다. 나이기는 이 두 가지 조건을 모두 충족시켰다. 나이키가 승리의 여신이라는 점도 마음에 들었다. 지금 승리보다 더 중요한 것이 어디에 있겠는가?”
그렇게 ‘나이키’가 탄생했다. 그는 경쟁사 아디다스가 버렸던 ‘에어쿠션’을 발전시켰고 홍보와 마케팅보다는 기술 개발에 몰두했다. 나이키가 정상에 오른 뒤 그는 주식 공모를 통해 1억7,800만 달러를 벌어들였다. 나이키는 신발 이상의 가치를 만들었다. 2013년 한 온라인경매에서는 마이클 조던이 1997년 NBA 파이널에서 신었던 ‘나이키 에어조던12’가 약 10만5,000달러(약 1억1,000만원)에 낙찰됐다.
저자는 “천직을 찾으면 힘든 일도 참을 수 있고 낙심해도 금방 떨쳐버릴 수 있다”며 “자신에게 믿음을 가져야 한다”고 조언한다.
‘은둔의 리더’는 직접 쓴 자서전에도 얼굴 사진 하나 수록하지 않았다. 하지만 가감없는 성공기를 솔직히 보여줬으니 괜찮다. 승리의 여신 ‘니케’ 조각상도 두상이 잘려 얼굴을 알 길 없지만 그 승리의 염원만은 확고하니 말이다. 2만2,000원
/조상인기자 ccsi@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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