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피감 기업이 외부감사인을 직접 선임하는 자유수임제 체제이지만 신규 상장 기업이나 부실기업에 한해 당국이 일정 기간 외부감사인을 지정하고 있다. 대우조선해양의 분식회계, 부실감사 사태 이후 이 같은 폐해를 예방하기 위해 전면적인 지정감사제나 자유수임과 지정감사를 번갈아 받는 순환 지정감사제를 도입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찬성 측은 지정감사제 강화가 현재 기업이 입맛대로 감사인을 선임하는 구조를 깨 감사인과 기업의 유착을 막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반면 반대 측은 감사인 지정을 강화하더라도 경영진의 재무제표 왜곡을 적발하는 데 한계가 있고 국제감사기준에도 어긋나 외국인투자가들의 신뢰도에 나쁜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반박하고 있다. 양측의 견해를 싣는다.
얼마 전 삼성전자가 최신 휴대폰 갤럭시 노트7 화재 이유를 배터리 문제만으로 진단을 잘못 내린 후 이어진 사태 악화를 모두가 지켜봤다. 배터리가 문제였다고 잘못 지목되면서 모든 일이 꼬여버렸다. 해당 제품은 전 세계 최단기간 내 생을 마감한 스마트폰이라는 불명예를 뒤집어썼고 삼성전자는 당장의 수조원의 손실은 말할 것 없고 앞으로 회복이 가능할지 예단하기 어려운 사면초가의 상황에 부닥쳤다. 진단을 잘못 내리면 어떻게 되는지를 여실히 보여준 뼈아픈 사례다.
병을 치료하려면 제대로 진단하는 게 우선이고 그 병증(病症)의 깊고 얕음에 따라 처방을 달리하는 것이 그 다음이다.
요즘 회계업계에서는 모든 상장사에 대해 감사인을 강제로 지정하는 방안에 대한 찬반 논의가 한창이다. 상장사 전면 지정제 도입에 찬성하는 사람들은 현재의 상황이 매우 심각한 만큼 전면지정제라는 충격요법을 써서라도 바로 잡아놓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반대 측은 현재의 상황은 심각한 위기는 아니며 외국의 주요국들이 도입하지 않는 전면지정제와 같은 충격요법은 너무 과격한 방법이라는 입장이다. 현재의 상황을 바라보는 시각이 다르기에 처방전도 판이하다.
지금 우리의 회계시장은 과연 괜찮은가. 지난 1980년 제정된 외부감사법이 시행된 지 올해로 꼭 36년째다. 이 기간 동안 외부감사법이 총 18차례나 개정됐다. 산술적으로는 정확히 2년마다 한번 개정한 셈이다. 그야말로 쉴새 없이 고치고 또 고치기를 계속 반복해왔다.
그렇다면 우리의 노력만큼 그 결과는 만족스러울까. 2016년 스위스 국제경영개발원(IMD)의 회계투명성 평가에 따르면 우리나라 순위는 국제적으로 61개국 중 꼴찌를 기록했다. 그것도 한 번이 아니라 몇 년째 계속 꼴찌 또는 꼴찌 주변에서 맴돌았다. 처음에는 운이 나빴겠거니 가볍게 넘겼지만 계속 반복되고 보니 정말 심각한 상태임을 깨닫지 않을 수 없다.
과거 1999년 대우그룹사태, 2002년 SK글로벌 사태 등 아주 어쩌다 한번 대형 회계 스캔들이 터져 나왔다. 그런데 요즘에는 2012년 저축은행 사태, 2013년 동양그룹·모뉴엘·대우건설 사건, 2014년 대우조선해양 사건 등 하루가 멀다 하고 초대형 회계분식 사건이 터져 나오는 형국이다. 한 마디로 중병 중에서도 이런 중병이 없다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우리나라 회계투명성은 심각한 위기에 직면했다.
원인을 살펴보면 모든 제도를 설계함에 있어 빠져서는 안 되는 기본 중의 기본적인 원리는 견제와 이해상충 방지다. 회사 내에서 절대권력을 행사하는 경영진을 견제할 수 있도록 도입된 제도가 바로 외부감사제도다. 경영진을 제대로 견제하려면 외부감사인이 회사에 종속되지 않고 ‘독립’돼 있어야 한다. 그런데 실상은 어떠한가. 자유선임제라는 허명 앞에 회계감사를 받아야 하는 경영진이 자신을 견제해야 하는 외부감사인을 직접 선택하고 외부감사인에게 지급할 감사보수도 경영진이 결정하고 직접 지급한다.
한일 국가대표 축구시합에서 일본에 심판 선택권을 주고 그 심판 수당도 일본이 지급한다고 가정해보자. 과연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만히 있을까. 그런데 똑같은 상황이 외부감사인 결정과정에서 벌어지고 있는데 어째서 여기에 대해 문제 될 것 없고 충분히 독립적인 회계감사가 이뤄질 것이라는 주장이 타당한지 모르겠다.
최근 일련의 회계분식 스캔들은 어쩌면 경영진에 대한 견제와 이해상충 방지라는 기본원리가 제도 설계 과정에서 누락되면서 생긴 치명적 설계오류일지도 모른다. 즉 소유와 경영이 제대로 분리되지 못한 후진적 기업지배 구조를 갖고 있는 우리나라가 1980년 외감법을 처음 제정하면서 기업지배 구조가 선진화된 미국의 자유선임제도를 잘못 베껴 이해상충의 문제를 제도적으로 해소시키지 않고 남겨둔 것이 화근이다. 경영진에 잘 보여야만 감사인으로 ‘간택’되는 구조, 가격을 낮게 후려쳐야 ‘선택’받는 구조, 깐깐하게 감사했다가는 바로 아웃되는 구조는 하루속히 개선돼야 한다.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견제기능을 근본적으로 무력화시키는 자유선임제도의 문제점을 바로 직시해 경영진으로부터 ‘진짜로 독립된’ 감사인이 경영진의 눈치를 보지 않고 돌직구와 견제구를 날릴 수 있는 감사환경이 조성될 수 있도록 상장사를 대상으로 한 감사인 전면 지정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 덧붙여 6년 동안은 기업이 자유선임하고 3년 동안은 금융당국이 지정함으로써 감사인의 독립성과 기업의 자율권을 함께 확보해줘 운용의 묘를 살리는 것도 바람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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