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 같았으면 ‘에라 모르겠다’며 다른 강아지나 씻기고 있을 참이었다. 그러나 이모가 다른 강아지 문제로 동물병원에 가야하고, 홀로 분양동을 지켜야 하는 상황이 되다보니 ‘나도 한번 이발기를 써볼까’하는 충동이 일었다.
마침 이녀석이 발목을 덥석 잡았다. “냄새나니까 내일보자”고 달래도 계속 올라탔다. 결국 이발기를 잡았다. 그땐 몰랐다. 강아지 털 한번 미는데 이틀이 꼬박 걸릴줄은.
똥 범벅에 엉켜버린 털 때문에 이발기를 10번쯤은 올려붙여야 몇 밀리미터 진도가 나갔다. 미용가위로 대충 목 아래까지 정리하는데 한시간, 또 대충 이발기로 살만 보이게 만드는데 두시간이 걸렸다. 손이 덜덜거리고 청소한 피로까지 겹쳐 ‘에라 모르겠다, 오늘은 여기까지’ 하고는 머리만 남겨놓고 집에 와버렸다.
다음날 센터에 올라가며 투덜댔다. 그녀석 손만 안댔으면 오늘은 쉬는건데 또 사서 고생이냐고. 이발을 마치고 세 번 씻기고 보니 그럭저럭 봐줄만 했다. 말끔해진 모습을 보니 시추는 시추인데 코와 입은 삐죽 나온, 사람들이 별로 좋아하지 않는 믹스였다. 입양은 갈 수 있을까 한참동안 생각하다 결론을 내렸다. ‘씻겨놓으면 이쁠거라’고.
센터에 올라갈 때마다 책임감이 들어 입양시간이 다가오면 이녀석을 가장 먼저 씻겼다. 평소 같으면 눈대중으로 입양예상순위를 정하고 순서대로 씻겼겠지만 이녀석 만큼은 내손으로 보내고 싶었다. 하루, 이틀이 지나고 또 일주일이 흘렀다. 그동안 사람들은 공고기간이 남은 1살짜리 퍼그를 데려가는데 올인하는 것 같았다.
2주가 흐른 뒤 금요일이었다. 입양을 원하는 네 가족이 센터를 찾았다. 퍼그는 가장 먼저 식구를 찾았고, 다른 강아지들은 사람만 오면 반기다가 하나 둘씩 그들이 사라지자 다시 시무룩해졌다. 세시, 운명을 가르는 시간이 지나서야 내 또래의 두 청년이 입양동에 들어섰다.
분양도 끝났다 집에 갈 시간이었다. 짜증이 밀려왔지만 “다 이쁘다 귀엽다 모두 데려가고 싶다”며 아이들을 바라보는 그의 눈빛에서 한시간 정도는 더 버틸 의지를 얻었다. 몇 마리의 강아지를 찍으며 세세한걸 묻는 청년에게 은근슬쩍 이녀석을 추천했다.
“혼자사는 집에서, 그것도 처음 강아지를 기르는 사람에게 가장 추천하는 품종은 시추다. 대체로 조용하고 온순하며 말도 잘 듣는다. 이녀석은 중성화 수술에 성대수술까지 된 상태에서 들어왔다. 내가 직접 털을 밀고 시시때때로 목욕시키며 잘 관리했기에 추천할만 하다. 어차피 분양시간은 지났고 돌아가 눈에 밟히면 월요일에 다시 왔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는 주말에 애견용품도 사놓고 공부도 한 뒤에 다시 오겠다고 했다. 이런 약속은 대부분 지켜지지 않는다. 그래도 혹시 몰라서 월요일 청소가 끝나자마자 이녀석부터 씻겨놨다. “넌 오늘 갈거니까 형한테 정붙이지 말라”면서.
입양시간이 다가오자 초조해졌다. 센터 밖으로 나가 슬쩍 그가 왔는지 살폈다. 2시까지 방문한 네 가족 중 그는 없는 것을 확인하고 담배를 물었다. 속이 쓰렸다.
여름들어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입양동을 찾은건 처음이었다. 정신없이 찾는 종이 있느냐, 포인핸드로 번호 확인했냐 묻고 있는데 뒤에서 한 남자가 슬쩍 인사를 건넸다. 반가운 목소리였다. 볼 것도 없이 금요일의 그 청년이었다.
기다렸다는 듯 그에게 이녀석을 안겼다. “오늘 올 줄 알고 미리 씻겨놨다”는 말을 듣고 그는 조금 놀랐다. 시간이 부족해 씻기지 못한 금요일의 누르딩딩한 몰골은 온데간데 사라진 이녀석은 누가봐도 봐줄만 했다. 그에게 “다른 사람들이 이녀석 데려간다고 하면 제비뽑기를 해야 한다. 빨리 안고 가라”고 했다. 정신없는 바람에도 “우리 다시 만나지 말자”고 인사했다.
서너번 고개숙여 인사하며 사무실로 향한 그와 이녀석을 뒤로하고 오늘 봉사자들은 네 마리의 강아지에게 새 가족을 찾아줬다. 총 푸들 세 마리, 시추 두 마리 모두 저마다의 사연이 있는 아이들이다.
돌아오는 길에 ‘왜 아이들에게 다시 보지 말자’고 인사하는지에 대해 생각했다. 한번 들어오면 절대 혼자 힘으로는 나갈 수 없는 센터에서 이녀석들은 일찍 죽거나, 아파 죽거나, 주인을 찾거나, 새로운 주인을 만난다. 죽지 않고 나가는 아이들은 극소수에 지나지 않는다.
강아지 대부분은 이 운명을 아는 듯 하다. 어떤 아이는 자포자기하고, 어떤 녀석은 자식을 돌보지 않아 결국 죽게 만들기도 한다. 분양동 아이들은 두시경이 되면 과도하게 활발한척 하다가 세시가 되면 다시 수그러든다.
새 주인을 찾은 이녀석은 정성껏 돌봐준 내가 마치 감옥의 간수처럼 느껴지지 않았을까 싶다. 강아지에게 유기동물센터는 아픈 기억이다. 만나면 아픈 기억이 떠오를 사람은 만나지 않는 것이 좋다. 이따금씩 초등학생 시절 농구부 코치 선생님이 그립긴 하지만 막상 만나면 수도 없이 맞던 기억이 떠오를 것 같아 괴로울 것만 같이.
분양가는 아이들에게 ‘잘 가고, 잘 살아라’라는 말 뒤에 꼭 ‘우리 다신 만나지 말자’를 붙였다. 앞은 의례고 뒤는 진심일 것이다. 새로운 주인을 찾아간 그녀석도, 그리고 그동안 센터를 거쳐 새로운 주인을 찾은 녀석들 모두 아마 잘 살고 있을 것이다. 그들과 함께 했던 시간이 그립지만 다시는 만날 일이 없기를….
/최상진기자 sestar@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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