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고학에서는 오늘날 중미(中美)를 메소아메리카 문명권으로 부르며 멕시코 북부의 아즈텍과 남부의 마야문명으로 나눈다. ‘메소’는 그리스어로 ‘중앙’을 의미한다. 기원전 2,000년께 발생한 마야문명은 현재의 과테말라·온두라스·엘살바도르·니카라과 지역 등에서 찬란한 문화를 꽃피웠다. 오늘날 이 지역은 250여개의 활화산, 천혜의 생물자원, 82㎞ 길이로 태평양과 대서양을 잇는 파나마 운하 등으로 유명하다. 최근에는 커피 경매사상 최고가인 파운드당 170달러를 기록한 파나마 게이샤와 코스타리카산 타라주 커피 등 1,200m 고산지대의 화산재로 다져진 토양에서 자란 중미산 커피가 전 세계 커피 애호가들의 사랑을 한몸에 받고 있다. 또 중미국가 중 가장 부유한 코스타리카는 군대가 없고 전 세계에서 가장 행복지수가 높은 국가로 니카라과는 이글거리는 용암을 볼 수 있는 마사야 화산과 마나과 호수로도 널리 알려졌다.
니카라과의 수도 마나과에서 한국과 중미 6개국(온두라스·엘살바도르·니카라과·코스타리카·파나마·과테말라) 간 자유무역협정(FTA)이 실질적으로 타결됐다. 지난 2015년 6월 FTA 협상을 개시하기로 합의한 지 1년5개월 만이다. 이로써 한국은 중미 6개국과 동시에 FTA를 체결하는 최초의 아시아 국가가 돼 중국·일본 등 경쟁국들보다 유리한 고지를 점할 수 있게 됐다. 특히 최근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Brexit), 미국 내 보호무역주의 등 반무역 정서가 세계적으로 퍼지는 상황에서 한국과 중미 6개국이 높은 수준의 포괄적 FTA를 타결했다는 것은 이러한 보호무역주의 확산에 경종을 울리는 성과가 아닐 수 없다.
이번에 타결된 한국과 중미 6개국 간 FTA의 의의는 크게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 중남미에서 국내총생산(GDP) 규모 5위(2,247억달러), 인구 규모 4위(4,478만명)의 신흥 성장국들을 안정적 소비시장으로 확보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됐다. 특히 상호보완적 교역구조를 활용해 자동차 및 부품, 철강, 석유화학 등 우리의 주력 수출품목과 가정용 전기제품, 화장품 등 중소기업 제품들의 수출이 확대될 것으로 기대된다. 둘째, 엔터테인먼트·건설·유통·통신시장 등 유망 서비스 시장을 비롯해 세계무역기구(WTO) 정부조달협정(GPA)의 비당사국인 중미국들의 정부조달시장이 개방됐다. 이로써 최근 개통된 파나마운하 확장공사에 한국 기업들이 참여했듯이 앞으로도 대규모 인프라 구축사업에 더욱 활발히 진출할 수 있는 제도적 틀이 마련된 것은 매우 고무적이다. 마지막으로 중미 6개국은 미주 전역의 국가들과 FTA 네트워크를 보유하고 있어 최근 보호주의 우려 속에서도 북미시장으로 진출할 새로운 교두보를 확보할 수 있게 됐다. 이에 따라 대미수출의 모멘텀을 이어가는 한편 향후 멕시코와의 FTA 협상 재개, 남미공동시장인 메르코수르(MERCOSUR)와의 FTA 추진에도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우리 기업들은 이미 섬유·의류 업체를 중심으로 중미시장에 깊숙이 진출해왔다. 엘살바도르와 과테말라에는 120여개의 한국 봉제·의류기업이 진출해 주재국 섬유 수출의 70~80%를 담당하고 수만명의 고용을 창출하는 등 국가 경제에 기여하고 있으며 이번 FTA 타결을 계기로 국내 섬유·의류 업계와 한 단계 업그레이드된 글로벌 가치사슬 형성이 가능할 것으로 전망된다. 파나마에서는 한국 기업이 70㎿급 디젤발전소와 석탄 화력발전소 건설 프로젝트에 참여했고 향후 지하철·교량 등의 건설사업 진출도 도모하고 있다.
니카라과에서 협상 중 겪었던 규모 5.8의 지진, 중미지역 지카바이러스의 위험, 1대6으로 긴박하게 진행된 막바지 개별협상 등 천신만고 끝에 탄생한 한-중미 6개국 간 FTA 협상은 95% 이상의 높은 자유화율이라는 성과를 내면서 극적으로 타결됐다. 그러나 한국과 중미국가 간 미래지향적 협력관계는 이제부터 본격적인 시작이다. 19세기 니카라과 불세출의 시인 루벤 다리오의 ‘너는 내 사람, 그 이상의 조화로움이 있을까’라는 시처럼 양측이 FTA를 통한 경제적 이익을 토대로 문화·인프라·정보통신·환경·교육·의료 등의 모든 분야에서 조화로운 상생관계를 발전시켜나가기를 바란다.
주형환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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