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여년 전 재벌그룹 총수가 불법 비자금 문제로 구속된 적이 있는데 독실한 기독교인이던 한 직원의 양심선언 때문이었다고 한다. 그 후 마찬가지로 기독교인인 필자의 제자가 그 기업에 지원했는데 면접에서 ‘하나님과 회사 중 어느 쪽이 우선이냐’는 질문을 받았다고 한다. 회사가 하나님으로 상징되는 도덕적 양심에 어긋나는 요구를 할 때 기꺼이 따르겠느냐는 질문이었다. 그 제자는 취직에는 성공했으나 상사의 계속되는 비윤리적 요구를 견디다 못해 1년도 못돼 이직했고 그 회사는 몇 년 후 또다시 비리에 휘말렸다.
공조직과 기업을 막론하고 조직생활을 하다 보면 상사에게 자신의 소신과 다른 행동을 강요받는 일이 허다하다. 현재 온 나라를 뒤흔들고 있는 국정농단 사태의 전개 과정에서 엘리트 공직자들이 권력자의 비윤리적 요구에 힘없이 무너진 것을 보면 조직세계에서 상사의 요구를 거부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상사는 인사권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거부할 경우 불이익을 당하게 된다. 이번 경우만 봐도 노대래 전 공정거래위원장, 유진룡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이석수 전 특별감찰관, 채동욱 전 검찰총장 등 당대 최고의 엘리트 공직자들이 권력자의 뜻에 반해 자신의 소신을 따르다 경질됐다.
상사가 부당한 요구를 할 때는 희생을 감수하고라도 소신에 따라 행동해야 한다고 단순하게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정부나 기업과 같이 다양한 사람들이 모인 집합체인 조직에서는 서로의 가치관과 이해관계가 충돌하는 경우가 많으며 이때 각자 원하는 대로 행동하면 조직이 마비된다. 따라서 자신의 소신과 다르더라도 전체 조직의 목적 달성을 위해 상사가 내리는 명령은 기본적으로 따라야 하는 것이 조직논리의 핵심이다.
관건은 소신과 다른 상사의 명령 중 조직논리에 따라 복종해야 할 것과 아무리 막강한 권력자가 강요하더라도 결코 따르지 말아야 할 것을 구분하는 판단력일 것이다. 많은 철학자가 이 문제에 대해 입장을 제시했는데 가장 대표적인 것이 ‘악법도 법’이라며 스스로 독배를 마신 소크라테스와 합법적 과정을 거쳐 선출된 권력자라도 도덕적 양심에 어긋나는 요구를 할 때에는 복종하지 않는 것이 의무라고 주장한 19세기 미국 철학자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시민 불복종의 의무’일 것이다.
언뜻 반대 입장으로 보이는 이 두 가지는 구체적 판단 기준을 깊이 생각해보면 실은 같은 주장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소크라테스는 자신의 가치관이나 선호도와 다르더라도 명령이 합법적이면 따라야 한다는 것인데 비해 소로는 합법성을 포함한 보다 근본적인 상위 원칙인 도덕적 양심이 기준이 돼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상사의 요구가 자신의 소신이나 선호도와 다르더라도 도덕적 양심에 어긋나는 악한 행위가 아니면 조직논리에 따라 순응해야 하며 반대로 아무리 법적 권한을 가진 상사의 요구이더라도 도덕적 양심에 어긋나면 불복종해야 한다는 것이 두 사람 모두의 입장이다.
이런 면에서 이번 국정농단 사태에 관련된 공직자들은 권력자의 비윤리적 요구를 도덕적 양심에 따라 판단하지 않고 조직논리만 맹목적으로 따랐다가 국가 전체를 위기에 빠뜨린 것이다. 따라서 공조직은 물론 기업에서도 단순히 기술적 능력만으로 사람을 뽑는 것은 위험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으며 반드시 상위 기준인 도덕적 판단능력을 함께 고려해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나라는 앞으로도 공동체를 자신의 사유물로 착각하는 소수의 권력자들과 이들의 명령에 맹목적으로 복종하는 ‘영혼 없는 공직자’들이 지배하는 전근대적 권위주의 사회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경제·안보·외교 등 국가의 생존을 좌우하는 영역에서 동시에 위기가 도래한 일촉즉발의 상황에 국가경영의 관제탑이 사라져버렸다. 이런 초비상 상황에서 주식회사 대한민국의 경영을 책임질 사람은 이 분야의 전문가인 우리 공직자들뿐이다. 이제 부당한 압력을 가할 권력층의 위세가 대폭 약화됐으니 우리 공직자들이 본연의 소명의식을 회복해 누구의 눈치도 보지 말고 도덕적 양심과 전문성에만 의존해 난파 위기에 빠진 대한민국을 구해내는 진정한 공복의 역할을 해주기를 기대한다. 신동엽 연세대 경영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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