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슬러의 자율주행 시스템은 아직 초보적인 수준이기는 하다. 지난 5월 7일 플로리다주 윌리스턴에서 발생한 테슬러차의 첫 사망사고는 충격을 줬다. 테슬러 모델S의 자동주행 센서는 ‘밝게 빛나고 있던 하늘‘과 트럭 트레일러의 하얀색을 구별하지 못해 브레이크를 제동시키지 못했고 시속 200km로 달리던 차에서 운전자는 즉사했다.
하지만 이런 사고에도 불구하고 자율주행차에 대한 세계인의 기대와 열광은 식지 않고 있다. 가장 큰 이유는 교통사고 때문이다. 세계보건기구(WHO)는 매년 세계에서 자동차 사고로 사망하는 사람이 125만명이라고 밝힌 바 있다. 2차 세계대전에서 군인과 민간인을 포함한 사망자는 5,000만 명이니 인류는 40년에 한번씩 2차세계대전을 치르고 있는 셈이다.
테슬러의 대표인 엘론 머스크가 가장 강조하는 마케팅 포인트가 바로 이 점이다. 그는 기존의 가솔린 자동차는 ‘위험한 물건’(?)이라는 인식을 심어 주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다.
구글 역시 자율주행에 대한 재미 있는 실험을 거듭하고 있다. 구글은 브레이크 페달이나 가속 페달, 운전대가 없으며 시속 25마일(약 40㎞)을 넘지 않는 차량을 만들었다. 어찌 보면 놀이동산의 팬더카나 골프장의 카트를 타는 듯한 느낌의 이 차는 느린 대신 안전성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안전성을 중시하는 구글이냐 스피드와 성능을 중시하는 테슬러이냐를 떠나 조만간 자율주행차는 우리의 일상에 자연스럽게 스며들어올 것이다. 그렇게 되면 ‘인간 운전 금지법’ 이 생길지도 모른다.
그런데 인간이 운전에서 해방되면 그 공간에서 무엇을 하게 될까. 자동차가 이동하는 거실이나 사무실이 될 때, 또는 침실이나 연인들의 데이트 장소가 될 때 인간은 무엇을 하게 될까. 그 해답은 전화로부터 진화한 스마트폰에 있다. 스마트폰은 자동차 역시 콘텐츠 플랫폼이 될 수 밖에 없다는 것, 그리고 그렇게 되면 기존의 자동차 제조업체는 콘텐츠 기업에 밀려 주연에서 조연으로 몰락할 지 모른다는 점을 암시해 준다.
지금 거실을 보면 네 명의 가족은 각자 다른 콘텐츠를 소비한다. 중학생 아들은 게임에 빠져 있고, 초등학생 딸은 SNS로 친구들과 수다를 떨고 있다. 아버지는 미국 NFL 스포츠 중계를 보고 있고, 어머니는 드라마에 몰입한다.
이러한 상황은 4인 가족이 자율주행차로, 마치 ‘기차 같은 자동차’로 이동하는 내내 재현된다. 그 시간이 한 시간이 될 수도, 20시간이 될 수도 있지만 그 가족이 그 시간 내내 생산하고, 교환하고, 소비하는 것은 자동차라는 하드웨어가 아니고 영화, 애니메이션, 게임, 드라마 그리고 SNS 같은 콘텐츠다.
심지어 지금은 1인 창작 시대이기 때문에 자동차는 제조공장이 되기도 하다. 자동차의 실내는 스마트폰이라는 5인치의 답답한 공간과 제한된 성능을 넘어선, VR이나 AR, 음성인식 AI로 무장한 자유로운 공간이 된다. 이렇게 되면 자동차는 네이버의 개발자나 아프리카 TV의 VJ, 유튜브의 동영상 제작자들이 공간을 초월해 자유롭게 콘텐츠를 생산할 수 있는 ‘생산공장’이 된다.
네트워크로 연결된 인간은 끊임 없이 상호작용하면서 가치를 생산해 내고 가치를 이전하거나 가치를 소비한다. 이것이 바로 자율주행차가 가져다 주는 진정한 가치다. 그리고 그 가치는 아이러니 하게도 가치의 근원을 자동차라는 ‘물건’이 아닌 콘텐츠로 이전시키게 될 것이다. 자동차 회사가 스스로 자신의 무덤을 파는 상황, 흥미롭지 않는가.
위정현 중앙대 경영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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