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신한·하나·우리·농협 등 5대 금융그룹이 내년도 사업계획을 마무리 짓고 있는 가운데 초유의 국정 혼란 사태보다는 ‘트럼프발 금리 인상’ 가능성이 내년 사업계획을 세우는 데 가장 큰 변수로 떠오르고 있다. 금리가 인상되면 금융 회사 입장에서는 순이자마진(NIM)이 높아질 수 있지만 금리 인상에 따른 글로벌 시장의 혼란이 금융 회사에 예측하지 못한 리스크로 작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금융그룹들은 이에 따라 비용 절감과 비이자이익 확보를 최우선으로 추진하고 디지털을 활용한 영업 혁신과 투자금융(IB) 등 신성장 동력 확보에 사활을 걸고 있다. 올해까지는 대출 자산 성장을 통해 수익 규모를 키웠지만 정부 규제 강화와 자본 확충 요구로 내년에는 자산 성장 자체가 쉽지 않을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또한 글로벌 시장 진출 확대나 인수합병(M&A)에 대해서도 대부분의 금융그룹이 신중한 입장을 보이고 있다. 금리 인상에 따른 글로벌 시장 혼란이 해외 법인 등에 악재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어서다.
30일 금융권에 따르면 5대 금융그룹이 최근 잇따라 임원진 워크숍을 개최하고 내년도 사업계획을 속속 마무리 짓고 있다. 대형 금융지주의 한 전략 담당 임원은 “금융 회사는 산업의 속성상 일반 기업과 달리 최순실 사태발 국정 리스크가 크지는 않다”며 “가장 큰 변수는 금리 인상과 더불어 채권 시장의 향방이며 본질적으로 새로운 수익원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KB금융은 지난 16일 일산 국민은행 연수원에서 계열사 임원 130여 명이 참석해 내년 사업계획을 위한 워크숍을 개최했다. KB금융의 내년 목표에는 해외 진출, 자산관리 전략, 기업금융 활성화 방안, 핀테크와 빅데이터를 활용한 미래 경쟁력 확보 방안 등이 담겼다. 대출 자산의 경우 정부 정책에 맞춰 가계부채 비중을 줄이고 중소·중견 기업 대출에 주력할 방침이다. 해외 진출은 동남아시아를 겨냥하고 있으며 시장 상황을 봐가며 인수합병(M&A)도 시도할 계획이다. 윤종규 KB 회장이 내년에 임기 3년차를 맞는 가운데 KB는 지나친 외형 확장보다 리스크 관리에 주력할 것으로 보인다.
신한금융 역시 내년 사업계획은 ‘한동우의 신한’을 완성하는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앞서 한 회장은 창립 15년사에서 신한금융의 전략 방향을 △디지털트랜스포메이션 △글로컬리제이션(해외 법인 현지화) △리스크 관리 강화 △원(one) 신한 구축 △따뜻한 금융의 체화 등으로 제시한 바 있다. 신한지주 고위관계자는 “디지털을 통한 영업의 연결과 확장, 계열사 간 협업을 통한 원신한 시너지 확대, 비대면 채널을 활용한 전략적 비용 절감 등에 사업계획의 방점이 찍혀 있다”며 “내년까지는 한 회장이 제시한 전략을 잘 이어가고 차기 회장이 내후년 새로운 비전을 내놓는 것이 자연스러울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은행 통합을 이룬 하나금융과 민영화가 목전에 다다른 우리은행은 이보다는 다소 공격적이다. 하나금융은 지난 15일 ‘판을 바꾸자’는 주제로 임원진 워크숍을 개최하고 중점 추진과제를 선정했다. 주요 과제는 △혁신 성장 동력 확보 △이익창출 기반 확대 △포트폴리오 최적화 등이다. ‘판을 바꾸자’는 주제에는 하나금융이 처한 현실에 대한 위기감이 묻어 있다. 하나금융 고위관계자는 “하나와 외환 각각의 장점이었던 자산관리와 외국환 부분에서의 시너지가 아직까지 부족한 것이 사실”이라며 “내년에는 영업 현장에서 아예 판을 바꾸는 다양한 혁신을 시도할 것”이라고 말했다. 하나금융은 다만 글로벌 진출 확대와 M&A 부분에서는 시장 상황이 녹록지 않은 만큼 최대한 신중히 추진한다는 방침이다.
우리은행은 민영화와 더불어 내년의 화두로 신성장동력 육성을 통한 도약을 중점 방향으로 잡았다. 성장의 축은 핀테크와 글로벌이다. 우리은행은 기업 금융의 강점을 최대한 살려 IB 분야에서 새로운 수익원을 찾는다는 방침이다. 농협금융 역시 내년을 ‘재도약의 원년’으로 선포하고 4대 중점과제를 선정했다. 농협금융의 중점과제 가운데는 다른 금융그룹에 비해 상대적으로 취약했던 조직문화를 확립하자는 ‘농협금융 DNA 정립’이 눈에 띈다. /윤홍우·강동효·이주원기자 seoulbird@sedaily.com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