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정관리인 A씨는 청산이 유력시되던 회사를 대기업에 좋은 조건으로 매각(피인수)했다.
회생 절차를 성공리에 마무리한 A씨는 연봉의 2배가 되는 성공보수금을 받았다. A씨는 자신이 맡았던 기업을 법정관리에서 졸업시키자마자 법원의 요청으로 다른 기업의 법정관리인으로 선임됐다. 대기업 임원 출신인 B씨는 회사 동료였던 A씨가 퇴직 이후 법정관리인으로 제2의 삶을 살고 있다는 소식에 법정관리인이 되기로 마음먹고 관련 교육을 이수했다. 전국 14곳 법원 파산부가 관리하는 법정관리 기업이 사상 최대에 이른다는 소식에 곧 제2의 인생을 살 것이라는 기대감에 부풀었다. 하지만 B씨는 2년째 법정관리인에 선임되질 못했다.
경기불황으로 법정관리 기업이 사상 최대를 기록하면서 법정관리인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특히 퇴직을 앞둔 대기업이나 금융권 임원 출신들이 자신의 경력을 살릴 수 있는데다 적지 않은 보수와 성과금을 받을 수 있다는 메리트가 알려지면서 지원자 수도 급증하고 있다. 법정관리인을 양성하는 기관들도 교육 과정과 인원을 늘리는 등 호황을 맞았다. 하지만 높아진 관심과 늘어나는 교육생에 비해 정작 관리인으로 선임되는 비율은 채 10%도 되지 않아 법정관리인이라는 인생 이모작의 꿈을 실현하기가 녹록하지 않은 실정이다.
5일 법조계에 따르면 법정관리 기업 신청 건수는 해마다 늘어나고 있다. 지난 2014년 873개에서 지난해 925개 기업으로 늘었고 올해에는 10월말 기준으로 803개사에 이른다. 이대로라면 올해도 사상 최대를 기록할 전망이다.
부실기업이 늘어나면서 법정관리인이 되고자 하는 수요도 높아졌다. 법정관리인 교육기관인 한국경영자총협회와 한국생산성본부는 늘어나는 수요에 맞춰 최근 양성과정을 확대했다. 경총은 1년에 두 차례 180명 규모의 수료생을, 생산성본부는 분기별로 60명씩 모두 240명의 수료생을 각각 배출하고 있다. 경총은 2∼3년 전보다 20∼30명 늘렸고 생산성본부도 1년에 두 차례였던 교육과정을 분기별 모집으로 확대했다. 이밖에 최근 법정관리인을 양성하는 교육 기관들이 하나둘씩 추가로 생기면서 올해에만 500명가량이 법정관리인 양성 과정을 수료할 것으로 보인다.
생산성본부 관계자는 “법정관리인에 대한 인기가 높아지면서 교육과정 경쟁률이 3년 전 5대 1까지 치솟기도 했다”며 “올해에는 2대1의 경쟁률을 보이고 있지만 그동안 교육인원이 확대된 점을 고려하면 여전히 높은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치열한 경쟁률과 200만원이 웃도는 높은 수강료 등의 부담을 이기고 과정을 수료해도 더 큰 장애물이 수료생들을 기다리고 있다.
교육을 수료한 인원이 수천명에 이르지만 이들이 실제로 회생 기업의 법정관리인으로 선임되는 사례는 열 명 가운데 한 명도 안 되기 때문이다. 실제로 서울중앙지법 파산부에서 회생 절차를 밟은 기업에 제3자를 관리인으로 선임한 비율은 7.5%에 그친다. 올해 10월말까지 접수된 회생합의사건 355건 중 제3자 관리인은 35건 미만이다. 이마저도 법원이 법정관리인 유경험자를 선호하다 보니 신규로 법정관리인을 맡는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서울중앙지법 관계자는 “제3자 관리인보다 회사 사정을 잘 아는 기존 대주주나 경영진을 법정관리인으로 선임하는 ‘기존경영자 관리인제도’(DIP)를 채권단이 선호한다”며 “횡령·배임 등 특별한 결격 사유가 없으면 신속한 회생 절차 진행을 위해 기존 경영 관리인이 법정관리인으로 선정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말했다. 이처럼 법정관리인이 되기가 ‘하늘의 별 따기’로 어려워지자 교육생 불만이 커지고 있다. 교육기관도 법정관리인 일자리가 생각보다 늘어나지 않자 골머리를 앓고 있다. 한 법정관리인 교육기관 직원은 “몇 년째 법정관리인이 되지 못한 일부 교육생들이 교육기관을 상대로 소송하겠다며 협박하기도 한다”며 “모 교육기관은 답답한 마음에 제3자 법정관리인을 늘려달라는 뜻을 전하기 위해 파산부 부장판사 집을 찾아가 문제가 되기도 했다”고 털어놨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려는 방안도 제시되고 있다. 업계에서는 공동관리인 제도 확대와 사전 최고리스크관리책임자(Pre-CRO) 도입 등에 대한 목소리가 높다. 경총 관계자는 “횡령·배임 등 결격 사유가 없더라도 기존 경영자들은 회사 부실에 대한 책임을 피할 수 없다”며 “객관적 시각에서 법정관리를 진행할 수 있는 제3자 관리인과 공동으로 기업 살리기에 나서는 게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법정관리에 들어가기 전 사전에 관리인을 선임해 기업의 추가 부실을 막고 회생절차에 들어가더라도 미리 준비해 피해를 줄일 수 있는 Pre-CRO 제도 도입도 고려해야 한다”며 “법정관리인 수요 확대를 위한 실질적 제도적 장치 도입을 법원에 건의하겠다”고 덧붙였다.
/노현섭기자 hit8129@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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