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당성을 지적하고 상식적 판결을 내려준 판사의 용기 있는 판단에 감사드리고 싶습니다.”
1970년대 유신정권 시절 민주청년학생총연맹 사건으로 사형 선고를 받고 억울하게 옥살이를 한 유인태 전 의원은 7일 국가가 이들에게 배상을 해야 한다는 법원의 판결에 씁쓸한 웃음을 지었다. 지난 2013년부터 끌어오던 싸움에서 처음으로 들은 반가운 소식이지만 앞으로의 과정이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20부(윤성식 부장판사)는 이날 유 전 의원 등 5명과 그 가족들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소송에서 “국가는 이들에게 27억3,000만원을 배상하라”며 원고 일부 승소 판결을 했다. 유 전 의원과 그 가족에 대한 배상금은 12억3,000만원이다.
유 전 의원은 1974년 유신정권이 불온세력의 배후 조종을 받아 대규모 폭동을 일으키려 했다는 혐의로 유신체제에 반대하는 학생 등 180명을 구속 기소한 대표적 공안사건인 민청학련 사건에 연루돼 사형 선고를 받았다. 이후 유 전 의원은 무기징역으로 감형돼 수감됐다 1978년 8월 형집행정지로 석방됐다.
이후 유 전 의원은 재심 청구 끝에 2012년 1월 말 무죄 확정 판결을 받았고 그해 3월 형사보상금 지급 결정을 받았다. 이듬해에는 국가를 상대로 위자료 소송을 냈다.
하지만 과거사와 관련해 국가에 손해배상을 청구할 때에는 재심 무죄 판결이 확정된 후 6개월 이내에 하거나, 형사보상을 청구했다면 그 결정 확정일부터 6개월 이내에 소송을 내야 한다는 2013년 12월에 나온 대법원 판례에 가로막혔다. 6개월 이내에 소송을 제기했어야 했는데 1년이 넘어 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지금까지 과거사 피해자들은 대법원 판결에서 나온 6개월 소멸시효 기간 때문에 소송에서 무릎을 꿇어야만 했다.
유 전 의원도 2012년 무죄 확정 후 1년이 지나 소송을 내 패색이 짙었다.
하지만 법원은 유 전 의원의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재심 무죄 판결 확정일 이후 6개월 이내에 권리를 행사해야 한다는 대법 판결은 이 소송 제기 이후에 선고된 것”이라며 “이 소송의 제기 무렵에는 권리 행사 기간에 대한 법리가 명확하지 않아 원고들이 6개월이 지난 후에 소송을 제기한 것으로 보인다”고 판단했다.
유 전 의원은 “6개월 소멸시효 적용으로 다른 과거사 피해자들이 소송에서 잇따라 패소해 이번 재판에 대해 기대감이 없었다”며 “이번 판결은 상식을 앞세워 부당성을 지적해 의미가 크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그는 앞으로 남은 대법원과 헌법재판소의 판결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그는 “이번 판결은 의미가 있지만 상급 법원으로 가면 이런 판결이 나올지 의문”이라며 “사법부가 상식적인 판단을 할 수 있도록 사법부의 독립을 보장하는 방향에 대해서도 고민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노현섭기자 hit8129@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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