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이 올해보다 더 춥다. 경기 하강을 막으려면 재정을 더 풀고 금리는 내려라.”
국내 대표적 싱크탱크인 한국개발연구원(KDI)의 내년도 경기전망과 정책 대응방안을 한 줄로 요약한 것이다. KDI의 경기진단은 ‘KDI 쇼크’라고 부를 정도로 충격적이다. KDI는 부동산 경기 하락 우려에도 불구하고 가계부채 부실을 막기 위해 주택담보인정비율(LTV)과 총부채상환비율(DTI)을 예전(2014년 8월) 수준으로 되돌릴 필요가 있다는 주장도 내놓았다.
KDI는 7일 ‘2016년 하반기 경제전망’에서 내년도 한국의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을 기존보다 0.3%포인트나 내린 2.4%로 전망했다. 이는 대통령 탄핵 정국으로 인한 국내 정치·경제의 불확실성, 신흥국 경기 급락 등 대외 변수의 추가 악화 같은 주요 변수를 제외한 수치다. KDI가 내년 성장률 전망치를 2.4%로 제시한 것도 국책연구원 입장에서 정부(내년 3.0% 전망)의 체면을 생각해 그나마 보수적으로 평가했다고 보는 이유다.
김성태 KDI 거시금융경제연구부장은 “브렉시트(Brexit), 미국 대선 결과 등 대외 불확실성이 커진 것을 반영해 성장률을 하향 조정했다”며 “정치적 혼란이 계속되면 성장률의 추가 하락은 불가피하다. 정책조합을 통해 얼마나 완충해나가느냐에 내년이 달렸다”고 말했다.
KDI는 성장률을 포함해 내년 주요 지표 전망치를 지난 5월보다 대거 하향 조정했다. 민간소비 증가율 전망치를 종전 2.3%에서 2.0%로 낮췄다. 또 설비투자와 수출 증가율은 각각 3.3%에서 2.9%, 2.7%에서 1.9%로 떨어뜨렸다. 물가 상승률도 종전 1.7%에서 1.3%로 하향 조정했다. 반면 실업률은 종전 3.7%에서 3.9%로 올렸다. KDI는 “세계 경기 부진으로 수출 부진이 장기화되는데 민간소비와 설비투자 등 내수까지 둔화되면서 경제의 전반적인 성장세가 악화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문제는 내년에 더 큰 경기 하방 요인들이 다가오고 있다는 점이다. KDI는 한국 경제를 옥죄는 대내외 위험 요인으로 △보호무역주의 확산 △중국의 성장세 둔화 △가계부채 증가 △구조조정 지연 등을 꼽았다. 특히 최순실 게이트 등 정치적 불확실성이 장기화하면 우리 경제에 큰 짐이 될 것으로 내다봤다. 각종 위험 요소가 아직 경제에 본격적으로 반영되지 않았지만 동시에 현실화되면 지금보다 경제가 더 나빠질 것이라는 경고다. 실제 각 연구기관들은 우리 경제가 올해보다 내년에 더 나빠질 것으로 보고 있다. LG경제연구원·한국경제연구원 등 민간 연구소는 이미 2%대 초반으로 전망하고 있다.
KDI는 경기의 추가 하락을 막기 위해 정부의 적극적인 폴리시믹스(policy mix·정책조합)를 주문했다. 김 연구부장은 “불확실한 미래에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며 “경기 불확실성이 커지면 가계는 예비적 저축률을 높이고 기업은 투자를 미루게 된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경기 하락을 막기 위해 정부가 좀 더 적극적으로 재정정책을 사용하고 통화정책은 완화적으로 갈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사실상 정부의 추가경정예산 편성과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추가 인하 필요성을 강조한 것이다.
KDI는 정부의 2016~2020년 중기계획상 재정정책 기조가 다소 긴축적이라고 평가했다. KDI가 정부의 재정정책을 직접 비판한 것은 이례적이다. 실제 최근 국회를 통과한 400조5,000억원 규모의 내년 예산 역시 올해 예산보다 3.7% 증가했지만 추경을 반영하면 증가율이 0.5%에 그친다. 김 연구부장은 “국세수입 증가에 따른 의무지출 자연증가분 등을 제외하면 기존 계획과 큰 차이가 없고 재정수지는 큰 폭으로 개선될 것이라는 점에서 정부가 재정여력을 비축하고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며 “대외적 경기 불확실성이 국내로 전이될 가능성이 높아질 경우 재정 확장으로 적극 대응해야 한다”고 밝혔다.
트럼플레이션에다 미국의 기준금리 인상 가능성으로 장기금리가 상승세를 보이고 있지만 한은이 아직 금리를 더 낮출 여력이 있다는 점도 강조했다. 김 연구부장은 “주요국의 통화정책 기조가 전환되더라도 국내 통화정책은 국내 경기 및 물가 등에 미치는 영향을 종합적으로 판단해 결정해야 한다”며 “미국이 금리를 인상하는 경우에도 국내 물가 상승세가 여전히 낮은 수준에 정체돼 있다면 금리 인하를 통해 대응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미국과 한국의 장단기 실질금리 차(스프레드)를 볼 때도 아직 금리를 추가로 인하할 여유가 충분히 있다는 지적이다.
/세종=김정곤·이태규기자 mckids@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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