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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의 독재> 독재는 경제발전의 필요악?

■ 윌리엄 이스털리 지음, 열린책들 펴냄

박정희·리콴유시대 고속성장

지도자의 능력과 큰 상관 없어

독재자·전문가 '발전' 앞세워

수많은 개인들의 권리 핍박

자유·민주주의적 가치 확산

독재자 굴레 극복해야 장기번영





박근혜 대통령이 2012년 12월 대선에서 승리를 거머쥔 배경으로 아버지 박정희(1917~1979) 대통령의 후광이 작용했음은 부인할 수 없다. 박 전 대통령은 전후 최빈국이던 대한민국의 기적적인 경제성장을 이끈 ‘새마을 운동’의 성공신화를 ‘업적’ 삼아 ‘독재’라는 치명적 흠결을 치환할 수 있었다. 그리하여 박 전 대통령의 긍정적 업적만이 투영된 박근혜 대통령은 ‘경제 발전’을 기대하는 상당수 국민들의 성공 향수를 자극했던 것이다.

따져보자. 1970년대 경제성장의 이유가 박정희 대통령인가. 뉴욕대학의 경제학 교수이자 16년간 세계은행에서 일한 발전경제학자인 저자 윌리엄 이스털리는 발전에 독재권력은 필요 없다는 입장이다. 독재자 집권기에 고도성장을 이뤄낸 한국의 역사와는 상반된 주장이다. 일례로 고도성장을 달성했다고 평가받는 독재자의 집권기간과 연간 성장률 자료를 종합해 보면 호황기는 이미 독재자의 임기 전에 시작돼 임기 종료 후에 끝난다. 즉 “고성장은 독재자와는 별 상관없이 단지 기술을 모방하는 속도 때문에 일어났던 것”이며 “한국이 권위주의적 지도자에 이어 과도기적 지도자, 민주적 지도자를 거치면서 달성한 고성장의 원동력은 특정한 지도자의 계획이 아니라 광범위한 국가적 상황이라고 보는 것이 더 합리적”이라는 분석이다.

독재자와 전문가집단의 경제발전 ‘명분’에 의해 오히려 개인의 권리가 침해당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책은 실제 경제 성장에 있어서 독재 권력은 필요하지 않다고 주장한다.


“왕권신수설이 통하던 시절의 국왕들이 신의 권력을 휘둘렀다면, 요즘 우리 시대의 독재자들은 발전의 권력을 휘두른다. 오늘날의 발전이 묵시적으로 지향하는 것은 기술적 전문가들을 자문가로 거느린 호의적인 독재자다.”

책은 이러한 경향을 ‘권위주의적 발전’이라고 부른다. 권위주의적 발전 모델은 정부가 필요한 전문가를 지명하고 이 전문가들이 문제점과 해결책을 정부에 알려줌으로써 발전을 성취해 나가는 형식이다. 독재자에 의한 강제보다 전문가들의 판단이 사회에 스며드는 게 더 손쉽다는 것을 간파한 구조다. 동시에 문제를 해결한 공으로 전문가들은 독재자 못지않은 ‘보상’을 챙겨간다. 20세기 중반 아프리카와 아시아 등지에서 식민지적 특권을 누리던 영국·미국의 정부와 전문가들이 자신들의 지배를 정당화하고자 정치적 강압을 물질적 발전으로 포장했다. 독재자의 경우 “나라의 경제를 발전시키는 지도자라는 이미지는 더 많은 권력을 얻는 데 아주 유용한 명분”이었기에 매력적이었다.



책은 아시아의 한국·중국·싱가포르, 유럽의 이탈리아, 아프리카의 가나와 에티오피아, 아메리카 대륙의 미국과 콜롬비아 등 전 세계 곳곳의 역사를 근거로 “독재자와 전문가 집단의 정치적 이해가 발전이라는 명분으로 수많은 개인들의 권리를 핍박해 왔다는 사실”을 입증한다. 민주주의와 자유의 가치가 세상을 이끌고 있음에도 경제 발전에 관해서만은 ‘민주주의의 예외’가 통용된다. 우간다 농민들은 경제개발을 이유로 멀쩡한 자기 집을 불사르는 만행을 보고만 있어야 했다. 이 불행의 역사가 계속되는 까닭은 가난을 기술적 해결책을 통해 극복할 수 있는 문제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이를 ‘테크노크라트적 환상’이라고 하는데 책이 밝히는 빈곤의 진정한 원인은 권리를 박탈당한 가난한 사람들을 상대로 아무런 견제 없이 행사되는 국가의 권력이다.

저자는 세계은행의 보고서와 연설에 민주주의라는 낱말이 사용되지 않는 것에 의문을 품었고 “세계은행의 설립헌장은 민주주의라는 낱말의 사용을 금지하고 있어서 그 낱말 자체를 사용하는 것이 법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저자는 독재자는 물론 세계은행과 게이츠 재단 등 전문가 집단이 독재권력의 횡포에 동참해 개인들을 억압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오히려 발전은 독재자 덕분이 아니라 독재자의 굴레를 극복한 결과이며, 서로의 권리를 중시하는 가치가 확산된 곳에서만 장기적 번영이 이뤄졌다는 사실이 그의 주장이다. 2만5,000원

/조상인기자 ccsi@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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