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쉽지만 하지원과 함께 출연해 지난 14일 개봉한 로맨틱코미디 영화 ‘목숨 건 연애’도 천정명을 대표하는 작품이 되기는 힘들 것 같다.
의심병 많은 추리소설작가 ‘한제인’(하지원 분)이 우연히 이태원 연쇄살인사건의 범인을 목격하고 직접 범인을 잡기 위해 나서는 일대 소동극을 그린 이 영화에서도 천정명은 비중은 하지원에 이은 두 번째 역할이지만, 극 중 임팩트는 ‘하지원의 소꿉친구’라는 조력자적인 느낌에서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이다.
영화 ‘목숨 건 연애’에 출연한 배우 천정명을 영화 개봉을 하루 앞두고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어려보이는 외모 덕분에 나이를 종잡기 쉽지 않지만, 어느새 30대 중반을 넘어 40대가 더 가까워진 나이에 접어든 천정명에게는 좋은 작품을 만나 배우로 좀 더 열심히 일하고 싶다는 간절함이 가득했다.
하지원이 하정우와 함께 한 영화 ‘허삼관’을 끝내고 좀 더 가볍고 재미있는 캐릭터를 하고 싶은 욕구에 ‘목숨 건 연애’를 선택한 것처럼, 천정명 역시 ‘목숨 건 연애’를 선택한 이유는 같았다. 당시 OCN 드라마 ‘리셋’을 통해 무거운 연기를 경험한 천정명도 기분을 환기시킬 수 있는 가벼운 작품을 찾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전에 한 ‘리셋’이 재미는 있는 작품이지만 우울한 캐릭터를 연기했거든요. 그래서 밝은 작품, 밝은 캐릭터를 찾고 있었는데 마침 달달하고 끌리는 시나리오였어요. 이런 캐릭터라면 저도 편안하고 자신있게 연기할 수 있다는 확신도 있었고, 특히 제가 좀 급하게 캐스팅이 됐는데 하지원 선배가 캐스팅됐다는 말에 주저없이 선택했죠.”
‘목숨 건 연애’에서 천정명은 그래도 제법 다양한 연기를 소화해낸다. 하지원을 짝사랑하는 동네 파출소 순경 ‘설록한’의 소시민적인 캐릭터부터, 고층 오피스텔 건물에서 벌어지는 진백림과의 치열한 개싸움, 그리고 마네킹의 목을 조르는 연기를 통해 잠깐이지만 연쇄살인범과 같은 날카로운 눈빛 연기를 선보이기도 한다. 이런 점에서는 군 제대 이후 출연한 두 편의 영화 ‘푸른 소금’이나 ‘밤의 여왕’에서 연기한 비교적 단선적인 캐릭터에 비하면 매력이 넘치는 캐릭터였다.
하지만 ‘목숨 건 연애’의 흥행 여부와는 상관없이 천정명은 지독한 ‘연기갈증’에 몸살을 앓고 있었다. 1980년 생으로 벌써 40대에 가까워진 나이지만, 여전히 ‘배우 천정명’을 대표할 작품을 남기지 못하는 자신에 대한 아쉬움과 갈증이었다.
“무엇보다도 배우로서 일을 계속 하고 싶어요. 황정민 선배님이나 송강호 선배님 같은 분들을 보면 정말 소처럼 쉬지 않고 작품을 하지 않나요. 저도 그랬으면 좋겠어요. 저는 아직 배우로 제가 좋아하고 마음에 드는 작품을 딱딱 만나기가 쉽지 않은 레벨이에요. 이런 부족함이 있다보니 아직은 제가 시나리오를 고를 정도도 아니고, 연기를 할 기회도 많이 없는 편이죠.”
배우로서 천정명이 많은 기회를 못 받는 것은 엄연한 사실이다. 그래도 드라마에서는 KBS ‘신데렐라 언니’나 ‘영광의 재인’, ‘마스터 : 국수의 신’, MBC ‘짝패’ 등 나름 방송사가 기대하는 드라마에서 주인공도 많이 맡았지만, 아직도 영화에서 천정명은 인지도가 그리 높지는 않은 편이다.
천정명이 배우로 기회를 많이 잡기 힘든 것에는 여러가지 이유가 있을 것이다. 1980년 생, 올해로 37세의 나이지만 생각보다 어려보이는 외모도 다양한 역할을 맡는 것에 걸림돌이 될 수 있고, 비슷한 나이 대에는 하정우(1978년생), 공유(1979년생), 강동원과 김남길, 김래원, 조인성(1981년생) 등 이미 스크린과 드라마를 통해 자리잡은 경쟁상대도 적지 않다.
“주인공을 꼭 해야한다는 것은 아니에요. ‘신세계’ 같은 영화에서 네번째나 다섯번째 정도 역할? 꼭 신이 많지 않아도 배우로서 눈에 들어오는 역할을 해보고 싶어요. 그렇게 열심히 하다보면 저도 언젠가는 송강호 선배나 황정민 선배처럼 유명한 감독님들에게 부름을 받는 날이 오지 않을까요?”
“제가 성격이 소심해서 그런지 먼저 다가서는 성격이 못 되요. 그래서 이제는 선배님들하고 술도 자주 마시고 감독님들도 찾아뵈면서 라인을 뚫어보려고요. 그럼 당장 제게 기회는 오지 않더라도 언젠가는 기회가 오지 않겠어요?”
드라마에서는 이미 주연급 배우로 불리지만 아직 스크린에서는 확실히 한 작품을 책임질 수 있는 주연급 배우가 아닌 천정명에게는 영화를 통해 좀 더 다양한, 그리고 깊이 있는 캐릭터를 연기해보고 싶은 욕심이 있다. 배우로서 벌써 15년 넘게 활동을 해왔지만 아직도 가슴 속 깊이 ‘타는 목마름으로’ 존재하는 천정명의 이런 연기열정이야말로 언젠가 천정명이라는 배우를 더 높이 끌어올리는 힘이 될 것이다.
“히스 레저를 보면 ‘다크 나이트’를 준비하는 동안 몇 달 동안 호텔에서 안 나오며 ‘조커’를 준비했다고 하더라고요. 저는 아직 연기를 하며 그 정도로 파고 들어본 적이 없어서, 그렇게까지 준비를 해봤다는 것이 존경스럽더라고요. 지금의 저로는 그 정도까지 따라갈 자신은 없지만 한 번 해보고 싶어요. 피가 끓어오르고 신나서 캐릭터에 몰입도 해보고, 극한의 상황까지도 한 번 가보고 싶어요.”
“제가 지금은 좀 살이 쪘는데 살을 빼면 얼굴이 어려보여요. 그래서 30대 중반 역할을 맡기도 쉽지 않아요. 얼굴이 어려보이다보니 캐스팅에 제약도 있는 것 같고. 그래서 좀 남성적인 얼굴로 변했으면 좋겠어요. 언젠가는 제가 하고 싶은 작품에서 최선을 다해 연기하는 그런 날이 오지 않을까요?”
/원호성기자 sestar@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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