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탄핵절차가 진행되고 있지만 정국은 여전히 불안하다. 대통령은 법절차에 의존해 회생을 노리는 것 같고 국회의원들은 나라 걱정보다 대권정치에 빠져 있다. 한구석에서는 후안무치(厚顔無恥)한 ‘비서’들이 뻔뻔스러운 교언(巧言)으로 국회를 우롱하고 있다. 국록 먹는 자들의 작태에 나라 주인들은 주말의 휴식을 포기하고 촛불 들고 태극기 들고 ‘너희 정신 차려!’하며 호통을 치고 있다. 그래도 “국민 여러분! 여러분 뜻을 헤아려 우리가 해결할 테니, 이제 그만하고 댁으로 들어가시지요”라 말하는 나라 머슴 하나 없다. 헌법재판소와 특별검사가 바쁘게 일하고 있지만 그래 봐야 결과는 ‘3류 정치’가 제 할 일 못해 겨우 법에나 호소해 마련한 궁여지책에 불과하기에 난국수습이 제대로 될지 걱정이다. 정치는 분명 권력을 융통성 있게 활용해 국리민복을 챙기는 국가 경영일진대, 지금 우리나라에는 향방도 없는 권력다툼과 세 싸움만 보여 100여년 전의 국망(國亡)이 다시 오겠다 싶어 걱정이 앞선다. 이 판국에 대통령선거가 목전에 있으니 정말 마음이 다급하고 쪼들린다. 우리가 대선이라도 제대로 치를 수 있을 것인가 하는 의구심도 든다. 그럼에도 우리는 완벽하지는 못해도 기어코 무엇인가 해내면서 지난 세기를 살아온 것이 분명하니 희망을 다시 부여잡고 차기 대통령에 대한 생각을 적어본다.
먼저, 새 대통령은 지금 이 나라에서 정치를 하는 이유와 명분, 즉 비전을 제시하고 실천할 수 있어야 한다. 지난 10년 동안 우리는 국가경영의 뚜렷한 방향이 없거나 실천되지 않아 그것이 무엇인지 모른 채 지냈다. 이명박 대통령은 새벽부터 일어나 ‘한반도 대운하시대’ 운운하다가 갈팡질팡했으며 박근혜 대통령은 ‘국민 행복시대’ 운운하다가 흐지부지 세월만 흘려보냈다. ‘논어’ 자로 편에서 공자는 정치에는 먼저 ‘반드시 정치의 바른 이름(正名), 즉 정치를 하는 바른 비전이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리고는 그 비전이 옳게 서지 못하면 사람들의 말이 불순해지고 소통이 안 되며(言不順), 나랏일도 안 되고(事不成), 문화도 발전하지 못하며(禮樂不興), 형벌제도도 기준을 잃게 돼(刑不中) 백성들은 몸 둘 곳을 모르고 정치인들은 서로 구차하게 변명하기에 바쁠 뿐이라고 역설했다. 1987년 체제로 온갖 시행착오를 겪으며 20여년을 버텨온 한국 민주주의는 다시 희망의 비전을 가지고 앞으로 나아가야 할 때가 됐으니 새 대통령은 현 상황에 대한 진단이 무엇이고 이뤄야 할 꿈이 무엇인지를 담은 국가 비전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은 나중에 유야무야 슬그머니 사라질 선거구호가 아니라 이승만·박정희·김영삼·김대중 대통령을 새롭게 이어가는 대한민국의 미래청사진이다.
새 대통령은 겸손과 소통에 익숙한 지도자여야 한다. 현대 민주정치에서 겸손은 형식적 예의가 아니다. 그것은 정직함과 균형감각·약속지킴·준법·덕스러움 등과 같이 성공적인 정치 리더십의 필수요소인 ‘행동양식 가치들(modal values)’ 중 하나다. 물론 여기에 자유나 평등, 그리고 민족 등과 같은 ‘목적가치들(end-values)’도 반드시 수반돼야 한다. 그런데 흔히 발전도상국가들의 정치에서는 겸손이나 정직과 같은 행동양식 가치들을 소홀히 여기는 경우가 많아 정치제도화가 지체된다. 조선왕조의 세종은 신분고하를 막론하고 백성은 누구나 ‘하늘백성이 아님이 없다(莫非天民)’면서 자신을 ‘하늘을 대신해 다스리는(代天理物) 군주’라 했지만 ‘하늘이 듣는 것은 바로 내 백성이 듣는 것(天聽自我民聽)’이라 여기고 언제나 부지런하고 겸손하게 주변 신료들은 물론 백성들의 소리를 경청하며 국사를 챙겼다. 더구나 국민 각자가 모두 천부인권(天賦人權)을 지닌 나라 주인으로 존재하는 민주공화국 대한민국에서 겸손과 소통은 공직자의 필수덕목이다. 또 지금의 우리 사회는 개발시대를 지나 다원화되고 전문화돼 다양한 자율적 집단들과 계층들이 공존하고 있기 때문에 정치는 행정부의 일방적 우위시대를 지나 국회중심으로 나아가는 것이 순리다. 따라서 새 대통령은 행정부의 최고책임자로서 국회가 국민주권 수임기관임을 먼저 인정하고 국회와 협력할 줄 알아야 한다. 그것이 겸손이요, 참 소통의 시작이다. 그렇게 되면 국회는 국법집행의 상머슴인 대통령을 국가원수로서 각별히 예우하며 시정연설 때는 서로 함빡 웃으며 기립박수도 쳐줄 것이다.
마지막으로 새 대통령은 무실역행(務實力行)으로 주변을 장악하고 주요 결정과 정책들을 결단력 있게 추진할 수 있어야 한다. 지도자의 비전과 안목이 출중해도 주변을 제대로 장악하지 못하면 아무 일도 할 수 없다. 이를 위해서는 국정의 방향과 목표에 충실하게 복무할 인재들을 널리 구하고 초빙해 그들이 스스로 열성을 다해 일하도록 해줘야 한다. 더욱이 우리나라는 내치와 외치를 아주 밀접하게 섞고 엮으면서 진취해야 하는 나라이기 때문에 대통령의 과감한 인사혁신과 결단력 있는 선택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그러기에 어느 때보다도 새 대통령은 이미 국정현장에서 주변과 협조하며 문제를 해결해본 경험이 있는 사람이 낫다. 그래서 시장이나 군수, 또는 도지사나 장관 등과 같은 직책을 수행하면서 자신을 단련시켰던 인물이 되는 것이 바람직하다. 다시 말해 ‘여러분이 뽑아주면 나는 이런 일을 장차 해보겠다’는 후보보다 ‘저는 이미 공직을 수행하면서 이렇게 일해왔다’며 자신의 경험과 문제의식을 진지하고 자세하게 말하는 후보가 당선돼야 한다.
그동안 우리 대통령들은 국정실무 경험의 유무가 중요시되기보다 선거공학적 기획과 ‘조작’, 그리고 선거꾼들에게 의존해 선출되곤 했다. 그러나 곧 다가올 대선에서는 공직을 통해 ‘말에는 신중하고 일에는 부지런한(訥於言 敏於事)’ 사람으로 자신을 훈련시켜(修己)왔던 인물이 당선돼야겠다. 그런 대통령이 희망찬 국가 비전을 제시하고 국회와 장관들, 그리고 국민들과 자연스럽게 대화하고 소통하며 일하는 모습을 볼 때 우리는 비로소 안심하고 사는 즐거움(生生之樂)을 만끽할 수 있을 것이다.
정윤재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전 한국정치학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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