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5일 청와대·검찰·국정원 등 권력기관 개혁을 공약으로 발표한 것은 이날 개헌특위 가동으로 확산될 조짐을 보이는 개헌 기류를 차단하고 나아가 탄핵 정국 이후 높아진 변화에 대한 열망을 자신의 지지로 돌려내겠다는 의지로 해석된다.
12일 귀국 예정인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과 개혁보수신당, 안철수 의원을 제외한 국민의당 호남 의원들, 손학규 전 민주당 대표, 정의화 전 국회의장 등은 개헌을 매개로 한 제3지대 구축을 추진하고 있다. 문재인 전 대표 측은 이들이 한데 모일 경우 자신들의 대통령 당선에 큰 위협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반기문 전 총장 귀국과 함께 확산될 것으로 보이는 개헌론을 사전에 저지하고 시중 여론을 촛불 민심을 반영한 국가개혁론에 끌어모으기 위해 이날 문 전 대표 측은 서둘러 ‘권력기관 대 수술론’을 발표한 것으로 해석된다.
이날 문 전 대표는 청와대 비서실장과 민정수석으로 근무했던 경험을 살려 촛불 민심의 타깃이 된 청와대 시스템 개편 방안에 대해 보다 구체적인 해법을 제시했다. 문 전 대표는 “대통령과 국민 사이를 가로막는 장벽을 허물겠다”며 “투명하게 정보를 공개하고 대통령이 직접 국민과 소통하겠다”고 ‘광화문 대통령’을 강조했다. 그는 세월호 침몰 사건으로 논란이 된 대통령의 일정 비공개 방침에 대해 “대통령의 24시간을 공개하겠다”며 “대통령의 일과가 국민들께 투명하게 보고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문 전 대표는 이 같은 방안에 대해 “이미 외국에서는 시행되고 있는 제도”라며 “대통령의 24시간은 공공재이다. 미국에서는 대통령학이라는 학문이 발전했는데 이는 미국 역대 대통령의 24시간이 기록됐고 이를 통해 대통령제의 문제점을 보완 발전시켜왔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그는 “인사 추천 실명제를 도입해 인사 결정의 전 과정을 기록으로 남기겠다”며 최순실 씨 등 비선 실세를 통해 파괴된 청와대의 인사 시스템을 개혁하겠다는 뜻도 내비쳤다. 또 ‘주사아줌마’ ‘보안손님’ 문제로 촉발된 청와대 경호 시스템을 지적하며 “권력의 상징이었던 청와대 경호실의 위상을 경찰청 산하 대통령 경호국으로 조정하겠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문 전 대표는 김기춘 전 비서실장,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 등 정치 검찰을 청산하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검찰의 수사권을 경찰에게 돌려주고 검찰은 2차 보충 수사권을 갖도록 해 검찰의 권력을 분산하겠다고 밝혔다. 또 고위공직자 비리수사처를 신설해 대통령과 친인척 측근 등도 수사 대상에 포함시키기로 했다. 검찰의 수사권 분리로 비대해진 경찰 권력의 분산을 위해서는 지방자치경찰제도를 도입해 국가 경찰의 민생치안 업무를 지방 경찰에 위임하는 방안을 제시했고 특별사법경찰인 노동부 근로감독관의 실질수사권을 강화해 노동자의 권리 보호에 앞장서겠다는 뜻도 내비쳤다.
또 문화계 블랙리스트 작성에도 관여했다는 의혹에 휩싸인 국정원에 대해서도 국내 정보 수집 업무를 폐지해 국정원을 해외안보정보원으로 개편하겠다는 것도 약속했다. 이날 함께 참석한 신경민 민주당 의원은 국정원의 대선 개입 사건, 남북대화록 유출 사건, 간첩 조작 사건 등을 언급하며 국정원 개혁의 필요성에 대해 지원 사격했다. 문 전 대표는 “미국의 CIA도 국내 정보 수집을 하지 않고 대공 수사권이 없다”며 3권 분립과 언론의 독립성마저 무너뜨린 국정원을 반드시 개혁하겠다고 주장했다. /박형윤기자 manis@sedaily.com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