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혜석(1896~1948)은 근대기 한국에서 자유연애와 남녀평등을 주장하며, 죽은 첫사랑 남자의 무덤으로 떠난 파격의 신혼여행, 남편 친구와의 불륜과 이혼 등으로 유명한 최초의 여성 서양화가이자 문인이었다. 그 당당함과 선구자적 행보와는 달리 나혜석이 남긴 자화상은 모딜리아니의 여인상 만큼이나 쓸쓸하다. “망연하고 우울한 듯한 눈빛과 얼굴 표정, 어두운 색조의 배경 등 전체적으로 좌절과 고독에 빠진 주인공”같은 나혜석의 얼굴에는 근대적 실천가로 살았지만 가치관을 이루기 어려운 현실에 대한 절망감이 배어 있다. 저자는 그 얼굴에서 신여성의 길이 실패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과 동양인이자 여성으로 겪는 이중적 차별을 읽었고, 이혼 전인 1928년 그린 자화상이라는 점에서 비운의 삶을 예견한 예술가의 직관을 포착했다.
원하는 모습이 나올 때까지 찍고 지우기를 반복하는 ‘셀카’처럼 자화상은 자신이 생각하는 이상적 이미지를 담고 있다. 저자는 조선시대부터 1950년대 초까지 한국의 화가들이 그린 자화상을 통해 미학적, 시대적 의미를 풀이했다. 특히 자화상의 배경과 소품, 시선과 눈빛을 중심으로 분석해 작품의 안팎을 두루 살폈다. 윤두서·강세황·채용신·고희동·이쾌대·장욱진의 자화상 등 읽을거리가 많다. 1만8,000원
/조상인기자 ccsi@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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