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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파식적] ‘포항 1고로’

1973년 6월9일 오전7시30분 포항제철소 제1고로에서 우리나라의 산업근대화를 이끈 첫 쇳물이 쏟아졌다. 비록 일본으로부터 받은 대일(對日)청구권 자금과 일본 기술로 지어졌지만 우리 철강인들의 의지와 열정이 아니었으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당시 박태준 포항제철 사장과 임직원들은 이 첫 출선(고로에서 쇳물이 나오는 것)에 두 손을 번쩍 들고 만세를 불렀다. 일부는 기쁨의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그로부터 34년 뒤인 2007년 5월30일 세계 최초의 신제철공법인 파이넥스(FINEX) 공장에서 쏟아진 쇳물을 보면서 철강맨들은 또 한 번 만세를 외쳤다. 이렇게 한국 철강산업이 세계 최고로 올라서는 데 밑거름이 된 것은 국내 1호 용광로 ‘포항 1고로’다. 1고로는 합판·스웨터·가발을 수출해 밥술을 뜨던 한국에 ‘산업의 쌀’이라는 철의 시대를 열었다. 여기에서 쏟아진 쇳물을 바탕으로 우리 철강산업, 나아가 한국 경제는 고속성장의 길에 들어섰다. ‘한국 경제의 산증인 ’ ‘민족 고로’라는 별칭이 붙을 만하다.

43년 넘게 꿋꿋이 산업현장을 지켜온 포항 1고로가 올해 역사 속으로 사라질 것 같다. 포스코 실무진에서 낡고 오래된 1고로의 가동 중단 결정을 내렸다는 소식이다. 그간 두 차례의 개수 작업 덕분에 버텨왔는데 이제 효율성에 한계가 왔다고 판단한 모양이다. 1,000도가 넘는 고온을 견뎌야 하는 고로는 15년 이상 수명을 유지하기 어렵다는데 1고로는 참 오래도 버텼다.



아직 최고경영진의 최종 판단이 남아 있지만 포스코가 추진해온 고로 대형화 작업을 감안하면 폐쇄가 유력하다고 한다. 용량 5,000㎥ 이상의 대형 고로를 짓고 있는 상황에서 1,660㎥에 생산 쇳물이 연간 130만톤에 불과한 1고로를 계속 가동할 이유가 없지 싶다. ‘이보 전진을 위한 일보 후퇴’ 격이랄까. 그래도 연내에 1고로의 종풍(終風·고로가 쇳물 생산을 마치는 것)식을 보게 된다니 아쉽다. 노병은 죽지 않는다. 다만 사라질 뿐이다. /임석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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