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수 특별검사팀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 대해 뇌물공여·횡령·위증 혐의로 구속영장을 청구한 것을 두고 ‘프레임에 맞춘 것 아니냐’는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대기업이라고 해서 편의나 특혜를 받아서도 안 되지만 ‘역차별’을 당해서도 안 된다는 주장이 일고 있다.
17일 재계와 법조계 관계자들은 “특검이 박근혜 대통령을 겨냥해 뇌물죄 프레임을 정해놓고 여기에 맞춰 이 부회장에 대한 구속영장을 청구한 것이 아닌지 의심이 간다”며 “18일 열리는 법원의 영장실질심사에서는 정치성을 배제하고 오직 법과 원칙에 따라 결정이 내려져야 한다”고 말했다.
특검의 영장청구는 반(反)기업정서에 편승한 측면이 크고 물증이 없는 상태에서 법적 요건도 제대로 갖추지 못한 만큼 법원이 객관적인 판단을 내려야 한다는 지적이다.
◇삼성에도 방어권 보장해야=특검이 이 부회장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한 것을 놓고 ‘프레임의 덫’에 걸린 결과라고 보는 시각이 많다. 영장 청구요건을 충족하지 못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박 대통령 유죄를 도출하기 위해 삼성을 억지 논리로 얽어맸다는 것이다.
최준선 성균관대 교수(법학전문대학원)는 “구속영장 청구요건을 모두 갖추지 못한 것으로 허점이 많다”며 “정해진 틀을 짜놓고 여기에 맞춰 이 부회장에 대해 영장을 청구한 것인데 법원에서 합리적인 판단을 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우선 증거인멸의 우려가 없다. 삼성은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와 관련해 검찰과 특검팀으로부터 미래전략실 등에 대해 세 차례나 압수수색을 받았다. 핵심 관계자가 검찰·특검·청문회 등에 불려 나가 조사는 받은 것은 17회에 달한다. 이 부회장 세 차례를 비롯해 최지성 미래전략실장(부회장) 한 차례, 장충기 미래전략실 차장(사장) 세 차례, 임대기 제일기획 사장 두 차례, 김재열 제일기획 사장 네 차례 등이다.
출국금지를 당한 상태로 도주 우려도 없다. 글로벌 기업의 총수인 이 부회장이 국내외에 몸을 숨기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구속요건을 충족하지 못하는 만큼 불구속 상태에서 삼성 측에 방어권을 충분히 주고 최종 유무죄 결정은 법원에서 내리면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법조계의 한 관계자도 “우리 헌법과 형사소송법은 기본적으로 도주나 증거인멸의 우려가 없으면 기본권보장 차원에서 피의자를 불구속 상태에서 수사하도록 규정하고 있다”며 “특검은 전형적인 ‘보여주기 식’ 결정을 내린 뒤 공을 법원에 떠넘기고 말았다”고 지적했다.
◇프레임에 맞추지 말고 불구속수사 필요=구속영장 청구에 대해 재계는 특검이 정교하게 짜놓은 ‘프레임의 덫’에 삼성이 걸린 것으로 보고 있다. 주범(主犯)인 박 대통령은 소환조사도 받지 않았는데 종범(從犯) 격인 이 부회장부터 처벌하는 것은 절차적 정당성도 결여하고 있다는 것이다. 박 대통령과 비선실세인 최순실씨를 경제공동체로 엮어 뇌물죄를 적용하려면 삼성과 이 부회장을 연결고리로 넣어야지만 범죄입증이 수월해지기 때문이다.
법조계 관계자는 “뇌물죄와 관련해 주범은 조사도 하지 않은 채 종범을 구속시키는 것은 상식에 어긋난다”며 “특검이 오판을 한 것으로 보인다. 영장실질심사를 하는 법원이 법과 원칙에 기초한 판단을 내려줘야 한다”고 말했다.
특검은 삼성 측이 미르·K스포츠 재단과 동계스포츠영재센터에 지원한 230억원은 제3자 뇌물공여죄에 해당하는 것으로 판단했다. 박 대통령이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간 합병에 대한 청탁을 삼성 측으로부터 받았고 삼성은 최씨 측에 뇌물을 공여했다는 것이다. 아울러 특검은 최씨 모녀가 대주주인 독일 코레스포츠(현 비덱스포츠)에 삼성이 지원을 약속한 213억원에 대해서는 단순 뇌물공여죄로 봤다.
정혁진 정진 대표변호사는 “삼성이 미르·K스포츠 재단에 출연한 자금에 대해 특검이 제3자 뇌물공여죄를 적용한 것은 반기업 여론에 밀린 감이 있다”며 “이들 재단에 출연한 50개 이상의 기업에게도 같은 죄목을 적용해야 하는 딜레마에 빠지게 된다”고 말했다.
이처럼 특검의 구속영장 청구 조치에 의문을 제기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는 가운데 특검은 이 부회장에 대해서만 구속영장을 청구한 것은 삼성의 경영 공백 우려를 고려한 결과라고 밝혔다. 특검팀 대변인인 이규철 특검보는 이날 브리핑에서 “삼성의 경영상 공백을 막아야 한다는 요구를 배려한다는 차원에서 이 부회장을 제외한 세 사람에 대해서는 불구속 수사 원칙을 취하게 됐다”고 말했다. 특검팀은 법리적 관점에서도 신병 확보는 이 부회장 한 사람으로 충분하다는 입장이다. 이 특검보는 “뇌물공여로 인한 수익 자체가 이 부회장에게 미치는 점과 나머지 삼성 관계자들은 범행 과정에 일부 조력하거나 관여한 정도에 불과하다는 점을 고려했다”고 설명했다.
/서정명기자 vicsjm@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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