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는 현재의 조직체제를 유지하려는 입장을 말한다. 인간은 자기 경험에 대한 신뢰로부터 변화를 꺼리는 경향을 가지는데 이것을 자연적 보수주의라고 한다. 그러나 이론적으로 체계화된 보수주의는 사회변혁에 대항해 현상을 유지하려는 지배계층의 속성으로 나타난다.
우리는 흔히 진보주의를 좌파라고 하고 보수주의를 우파라고 한다. 대공황 이후 자본주의체제의 불평등과 빈부격차에 대항하기 위해 사회주의가 등장하고 자본주의 모순을 해결하려고 시도했으니 좌파를 진보라고 부르는 것은 당연하다.
‘보수’는 공산주의로부터 나라를 지켜냈고 한국 경제를 세계 수준으로 끌어올린 주역으로서 반공·친미·성장중심·시장경제를 추구하며 현재 체제를 유지하려는 사람들이라고 자부한다. 반면 ‘진보’는 대한민국 민주화를 이끌어낸 주역이며 친북·복지확대·분배강화 등 사회체제를 변혁하려는 사람들이라고 자부한다.
이처럼 아직도 우리는 진정한 보수와 진정한 진보의 의미를 제대로 규정하거나 인식하지 못한 채 좌파 대 우파의 진영논리로 양분하고 있다. 진정한 보수란 높은 질서와 안전의식, 역사와 전통의 존중, 가족적 가치, 높은 교육수준과 준법의식, 공동체를 위한 강한 책임과 의무, 기본에 철저함 등이 ‘보수의 가치’다. 특권과 편법, 기득권의 유지가 보수의 가치가 아니듯이 진정한 ‘진보의 가치’ 역시 제대로 규정돼야 한다. 철학과 비전을 위해 이념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생존의 수단으로 전략적 포퓰리즘이 진보의 아이콘이라는 허상을 달아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이제 시대가 변해 국제사회에서도 보수와 진보의 대결이 무의미해지고 있다. 과거 남미국가들에서 이미 경험했지만 진보 좌파정권으로 인해 지금은 남유럽국가들조차 경제가 파탄에 빠져 이미 그 동력을 잃었다. 프랑스·오스트리아·폴란드에서는 좌파도 우파도 아닌 중도파가 힘을 얻고 있다. 미국 대선에서도 보수 공화당의 가장 변혁적 후보인 도널드 트럼프가 당선되지 않았는가.
지금 세상에 공산주의자가 아닌 이상 가족적 가치와 역사와 전통을 무시하는 진보가 어디 있겠으며 사회의 발전적 변화를 바라지 않는 보수가 어디 있으랴.
‘가짜 보수’와 ‘가짜 진보’ 논쟁은 보수와 진보의 참뜻을 모르는 정치인들의 말장난이고 정치적 진영 대결을 위한 엉터리 명분일 뿐이다. 유력대권주자들조차 자신들이 ‘진보적인 보수’이고 ‘보수적인 진보’라며 스스로를 ‘동그란 네모’라고 모호한 정체성으로 표현하고 있다. 보수와 진보는 단순히 수구와 혁신의 대칭적 의미로 누가 더 분배적 정책을 내는 경쟁이 아니라 정치·경제의 철학과 비전의 차이를 명확히 해야 한다. 국민들은 진영논리 대결에서 이기는 정치판의 승리자가 아닌 대한민국을 제대로 이끌고 갈 지도자를 갈구하고 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진보정권도 보수정권도 아닌 대한민국을 합리적으로 이끌어갈 지도자다. 국민들은 이제 더 이상 포퓰리즘 경쟁도 싫고 보수주의와 진보주의의 대결도 원하지 않으며 좌익도 우익도 아닌 합리적 지성과 사회적 책임의식을 갖춘 ‘합리주의 정당’을 원하고 있다.
국가의 모든 구성원에게 사회적 책임과 역할을 당당히 촉구하며 공정한 사회를 이끌어갈 지속 가능한 대한민국의 진짜 지도자를 제대로 골라낼 수 있어야 한다. 똑똑한 시민이 세상을 바꾼다. 이제 정신 바짝 차리자.
김성택 넥스트소사이어티재단 이사장·경희대 경영대학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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