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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경이 만난 사람- 구정모 차기 한국경제학회장]한국경제 L자 침체..트럼프리스크 견딜 체력 안돼 더 문제

국가채무율 사실상 100%...재정·통화·환율 대응 힘든 '정책절벽'

컨트롤타워 구축·리스크관리 시스템 등 근본해결책 수립 급선무

기업투자·청년실업 해결 위한 기업소득환류세 가중치 손봐야

20일 구정모 한국경제학회 회장./이호재기자.




‘미국 우선주의’를 표방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취임으로 한국 경제의 불확실성이 증폭되고 있다. 저성장 장기화에 탄핵정국까지 덮친 상황에서 트럼프노믹스는 한국 정부와 기업의 긴장도를 최고조로 끌어올리는 모습이다. 지난 20일 서울경제신문과 만난 구정모(63·사진) 신임 한국경제학회장(강원대 경제학과 교수)은 “우리 경제는 이미 2012년부터 ‘L자형’ 만성 침체가 진행되고 있다”며 “트럼프 취임 이후 위기 가능성이 더욱 가속화하고 있지만 우리는 이를 감당할 수 있는 시스템과 컨트롤타워도 못 갖춘 상태에서 포퓰리즘만 난무하고 있다”고 우려했다.

구 신임 회장은 “2012년부터 저성장·저소비·저투자 등 3대 거시지표가 거의 바닥을 기면서 구조적·만성적 침체가 진행되는 상황”이라며 “그러나 재정·통화·환율정책 등 3대 정책 가운데 재정은 별 효과가 없고 금리는 미국 금리 인상으로 내리기 힘들며 환율 또한 미국 눈치를 보느라 손대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위기를 인지하면서도 정책적으로 대응하기가 쉽지 않다는 의미다.

그는 “미국 공화당은 전통적인 공화당 기조대로 가고 강력한 정부를 표방한 트럼프 대통령은 1조달러의 인프라 투자를 비롯한 확장적 재정정책을 표방하면서 트럼프 정부의 정책은 ‘혼탕’의 모습을 띨 것”이라며 “미국의 금리 인상 속도가 빨라지면서 신흥시장에서 트럼프 리스크가 더 증폭될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봤다. 다음달부터 전국 4,500여명의 경제 전문가를 대표하는 한국경제학회를 이끌어 나갈 그에게 우리 경제의 현안과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물었다. /대담=이연선 경제정책부 차장 bluedash@sedaily.com

-경제학의 만국박람회라 불리는 전미경제학회(AEA)를 최근 다녀왔다. 어떤 인상을 받았나.

△한마디로 속상했다. 1만여명의 경제학자가 모인 그곳에서는 새 시대에 맞는 새 정책을 찾겠다는 열기가 뜨거웠다. 우리나라가 여전히 구시대적 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조지프 스티글리츠 미국 컬럼비아대 교수의 말이 인상적이었는데 제조업의 시대가 끝났다고 하더라. 제조업 위주의 성장·수출·성장전략은 더 이상 가능하지 않다고 했다. 주로 중국을 향해 얘기한 것이지만 우리한테도 해당되는 말이다. 실제 생산공장은 중국에서 베트남으로, 베트남에서 인도와 인도네시아로 남하하고 있다. AEA가 아니더라도 연초부터 다보스포럼, 국제전자제품박람회(CES) 등을 봐라. 세상이 어마어마하게 돌아가고 있는데 우리는 뭘 하고 있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 경제를 진단한다면.

△2012년 이후 성장·소비·투자 등 3대 거시지표가 바닥을 치고 있다. L자형의 만성적 침체라고 봐야 한다. 여기에 트럼프의 미국 대통령 당선 이후 중국 리스크와 연결되면서 위기 가능성이 ‘고조(escalation)’되고 있다. 이런 상황이 계속 가게 되면 퍼펙트스톰이 올 수 있다.

-위기 요인을 짚어준다면.

△우리나라는 지금 ‘리스크 공화국’이라고 불러도 된다. 만성적인 침체 상황에서 급작스럽게 트럼프 리스크가 불거져 나왔다. 차이나 리스크는 계속 있었고 금리 인상도 예고됐던 것이지만 트럼프 리스크로 인해 이 같은 충격이 더 강렬하게 다가올 수 있다. 우리는 홍콩을 포함한 대중 수출이 전체의 30%를 넘는다. 미국은 10%다. 전체의 40%인데 미국과 중국이 보호무역 등을 이유로 다투게 되면 수출 타격이 클 수밖에 없다. 또 (트럼프 행정부 출범으로) 미국의 금리 인상 속도가 빨라지면 (우리나라 등) 신흥시장에서 돈이 빠지는 속도가 빨라지면서 위기 가능성은 더 커진다.

이번 AEA에서 내년 임기가 시작되는 차기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 물망에 오른 존 테일러 스탠퍼드대 교수 등 ‘트럼프 맨’들은 미국 경기지표도 괜찮고 돈도 많이 풀려 있는데 금리를 빨리 올리지 않았다고 계속 지적했다. 중국이 환율조작국으로 지정될 가능성이 높다. 우리도 지정될 수 있다. 원고(高)가 와도 손을 댈 수 없다는 뜻이다. 이 같은 리스크의 상호 상승 작용으로 갑작스러운 위기가 올 수 있다. 트럼프 정책이 우리에게 다가오는 파장은 예상보다 크다. 정책이 혼탕이라 예측하기도 어렵다.

-일본식 장기침체에 빠질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일본식 침체에 대해 너무 쉽게 말하는 측면 있다. 일본은 1992년부터 위기가 와서 1993년부터 돈을 풀기 시작했다. 그게 먹히지 않자 1995년부터 구조개혁을 시작해 1998~1999년 은행을 합병하는 ‘금융 빅뱅’을 했다. 그것도 부족해 고이즈미 준이치로 내각이 2001년부터 구조개혁을 했지만 결국 경기를 살리지 못했다.

그럼에도 일본에는 제4차 산업혁명의 원천기술을 가진 기업이 많고 자금력도 상당하다. 가계 순금융자산이 1,000조엔(약 1경200조원)에 달하는데 일본의 국가채무(약 1,100조엔) 중 90%를 국내 기관투자가가 가지고 있는 것을 감안하면 국가채무를 걱정할 필요도 없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민간과 기업이 지난 성장에서 쌓아놓은 그 같은 ‘저량(stock)’이 없다. 우리나라에 일본식 침체가 온다면 일본의 잃어버린 20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가중적 위기가 올 것이다.

-저성장을 탈출할 수 있는 방법은.

△‘정책절벽’ 상황이다. 우리나라처럼 시장이 개방된 나라는 재정정책보다는 통화정책이 더 적절한 경기부양 수단이다. 하지만 미국이 금리를 올리면 통화정책에 손을 댈 수가 없다. 트럼프 당선으로 중국이 관찰대상국(환율조작국)으로 지정되면 환율도 마찬가지 꼴이 된다.

유일하게 남은 수단이 재정이지만 추가경정예산안을 편성해도 전혀 효과가 없는 짓이 되는 상황이다. 우리나라의 국가채무비율을 38~40%로 얘기하고 있는데 이는 현금주의 회계 기준이다. 발생주의 회계 기준으로 보면 국가채무비율은 어림잡아 70%다. 상대적으로 비중이 큰 공기업 부채를 넣게 되면 90%, 금융공기업 외평채 등을 포함하면 100%를 넘어간다. ‘과잉채무가설’에 따르면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가 90%를 넘으면 돈을 풀고 저금리 상황이어도 성장을 못한다. 지금까지 박근혜 정부는 추경으로 돈도 풀고 금리도 낮췄다. 돈도 풀고 금리가 낮으면 성장해야 하지만 성장을 못했다. 우리도 과잉채무인 것은 아닌가 의심해볼 수 있는 상황이다.

결국 리스크를 관리하기 위한 시스템을 정비하고 컨트롤타워를 정리하는 게 급선무다. 근본적인 해결 방안에 대해서는 정치권에 묻겠다. 학계는 객관적인 현안 진단과 나아가야 할 방향까지만 짚는 ‘공기(公器)’ 역할을 해야 한다.

-대선 주자들이 경쟁적으로 증세와 확장적 재정정책을 내놓는데.



△증세는 경제가 좋을 때 해야 하는 것이다. 경제를 살리려고 돈 풀자고 하는데 증세는 말이 안 된다. 경제가 좋아지면 세수는 늘게 마련이다. 또 법인세 인상 문제는 지엽적이다. 이미 미국은 지난해 여름부터 법인세를 대체하기 위해 ‘현금흐름세(Destination-Based Cash Flow Tax)’ 논의를 시작했다. 법인세는 기본적으로 이중과세 문제 등 문제점이 지적돼왔다. 현금흐름세는 매출에서 임금을 제외하고 세금을 부과해 이중과세 문제를 해결하자는 게 기본 개념이다. 우리나라는 지금까지 실효세율로 소모적인 정치 논쟁을 해왔는데 이제는 더 큰 담론을 얘기해야 할 때다.

지금 대선 후보들이 내건 복지정책이 이론적이나 실증적으로 성공한 경우가 없다. 북유럽 얘기를 하는데 북구는 이미 선진국이 된 후 수십년간 해왔다. 복지를 늘리려면 김대중(DJ) 정부 때 나온 생산적 복지 개념으로 가야 한다. 이미 서구의 많은 국가가 다 그쪽으로 방향 전환을 했다.

-벌써 정부개편안 얘기가 나온다.

△예산과 세제는 같이 가는 게 바람직하지 않다. 재정과 통화가 같이하면 안 되는 것과 같은 이치다. 1990년대 재정경제원 시절에 예산과 세제, 금융을 같이 했더니 결과는 외환위기였다. 당시 최고의 엘리트 집단이었고 경제학박사만 60명이 있었지만 가장 대표적인 정책 실패의 표본이다.

-졸업 시즌이다. 청년실업 문제가 심각한데.

△대기업들이 채용한다는 기사들이 신문에 많이 나온다. 하지만 어느 기업도 최종적으로 몇 명을 뽑았는지 숫자를 밝히지 않는다. 30대 그룹의 사내유보금이 760조원가량인데 정부는 이를 겨냥해 기업소득환류세제를 만들었다. 이 제도는 (차기 정부도) 계속 가지고 가야 한다. 정부가 이를 임금 쪽으로 흐르게 하려고 가중치를 150% 줬는데 기존직원 임금보다는 신규채용에 가중치를 더 많이 주도록 손봐야 한다. 이미 대기업 노조는 너무 많이 받고 있다. 신규채요을 위해서라면 가중치를 200~300%까지 줘도 된다. 청년실업이 외환위기 때와 비교할 수 있을 만큼 최악인데 왜 그렇게 하지 않는지 모르겠다.

물론 기업이익환류세제의 최선의 목적은 투자다. 기업 이익구조를 보면 대기업·중견기업·하청기업으로 내려갈수록 나빠진다. 기업소득환류세를 통해 대기업에서 일거리를 받는 하청 중소기업에 더 투자하도록 인센티브 체계를 만들 수 있다. 이익을 같이 뜯어먹는 것은 사회주의지만 인센티브를 통해 시장 기능으로 분배되게 하면 사회주의가 아니라 상생이다. /정리=김상훈기자 ksh25th@sedaily.com

“3월 정책포럼 개최...대선후보 포퓰리즘 공약 걸러낼 것”

20일 구정모 한국경제학회 회장.


다음달 취임하는 구정모 한국경제학회장은 52년 출범한 학회 역사상 첫 지방대 교수 출신 회장이다. 지금까지 한국경제학회는 철저히 서울 중심, 개인 중심으로 운영돼왔다. 구 신임 회장은 “지금까지 한국경제학회장은 서울에 있는 6개 대학에서만 배출돼왔다”며 “서울만을 위한 학회가 전 지역화돼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회장으로 취임하면 집단연구를 늘릴 계획이라고 밝혔다. 구 신임 회장은 “우리나라는 ‘학회’는 많은데 ‘연구회’는 없다”며 “학술연구는 개별 연구자가 발표하고 싶은 주제를 와서 발표하고 끝나는 방식인데 우리 학계는 정책 연구자들이 특정 주제를 놓고 모여서 연구하고 결과를 발표하는 조직화된 연구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일본의 경우 연구회가 바탕이 돼서 학술연구·정책연구가 활발히 진행된다. 좋은 예가 최근 발족한 ‘국제연대세 도입을 위한 제도 등 연구회’다. 일본 정부는 공적개발원조(ODA)를 통해 신흥개발국에서 자국 기업의 영향력을 키우는 대표적인 나라다. 원조자금 마련을 위해 외환거래나 국제 항공권에 세금을 부여하겠다는 게 국제연대세다. 연구회는 데라시마 지쓰로 일본총합연구소(JRI) 이사장을 필두로 한 전문가 그룹으로 꾸려졌다. 구 신임 회장은 “60여개의 경제학 관련 학회의 총본산인 한국경제학회의 역할 변화를 지렛대 삼아 학회에 변화의 숨결을 불어넣겠다”고 말했다.

그는 산적한 우리 경제의 문제점들을 해결하기 위해 학회의 ‘공기(公器 )’로서의 역할도 강화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지금까지 각종 세미나는 의사결정 과정이나 사회적 분위기 형성 등에 ‘의미 있는 영향(impact)’을 주지 못했다”며 “우리 경제가 가장 수렁에 빠져 있는 시기인데 현안 진단자 역할을 충실히 하겠다”고 말했다. 그 첫 시도로 한국경제학회는 오는 3월 정책포럼을 개최해 대통령선거에 출마하는 각 캠프의 경제정책 공약을 비교 분석하고 포퓰리즘 성격의 공약을 비판할 예정이다. 구 신임 회장은 “3월을 시작으로 올해 정책 세미나를 4회 정도 계획하고 있다”며 “각 후보의 정책 담당자를 모아 포퓰리즘을 가려내는 자리가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우리 사회가 해결해야 할 과제로 십수 년 전부터 꼽혔던 재벌개혁·노동개혁 등에 대한 종합적인 분석도 시도된다. 그는 “재벌개혁도, 노조에 대한 개혁도 같은 공간에서 논의가 안 되면서 개혁이 계속 겉돌고만 있다”며 “모두 나와서 얘기할 수 있는 장을 마련하고 그곳에서 객관적인 필터링을 할 수 있도록 하는 게 학계의 역할”이라고 말했다.

구 신임 회장은 한국을 중심으로 아시아 경제학회를 꾸리겠다는 포부도 밝혔다. 그는 “미국도 전미경제학회(AEA), 유럽도 각국 경제학회가 연대한 유럽경제학회(EEA) 등이 있지만 아시아는 중국과 일본의 반목 등을 이유로 학술연구 연대기구가 없다”며 “오는 7월 개최될 예정인 국제학술대회를 통해 아시아 경제학회 출범을 위한 논의를 시작하겠다”고 전했다.

구정모 차기 한국경제학회장 약력

△1953년 대구 △1976년 성균관대 경제학과 △1980년 미 캔자스대 경제학석사 △1986년 미 미주리대 경제학박사 △1986년 미 노스다코타대 조교수 △1990년 제7차 경제사회발전5개년계획 재정계획위원 △1996년 미 스탠퍼드대 객원교수 △2005년 한국재정학회장 △2007년 한국경제연구학회장 △2011년 광역두만강개발계획(GTI) 수석컨설턴트 △2014년 한국조세재정연구원 재정전문가네트워크 총괄PM △1988년~ 강원대 경제학과 교수 △2014년~ 경제인문사회연구회 국제화위원장 △2017년~ 한국경제학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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