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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파식적] ‘장소의 정치학’





엊그제 45대 미국 대통령에 취임한 도널드 트럼프가 지난해 말 대선에서 마지막 유세장으로 선택한 곳은 미시간주였다. 트럼프는 당시 “에너지가 가득 찬 미시간주야말로 유세를 마무리하기에 가장 적합한 장소”라면서 “내가 이기면 공업을 다시 한 번 부흥시키겠다”고 유권자들에게 호소했다. 미시간주는 몰락한 공업지대인 ‘러스트 벨트(Rust Belt)’의 대표 지역이었고 결과적으로 트럼프의 선거전략이 맞아떨어진 셈이다.

정치학자들 사이에서는 ‘장소(場所) 이론’에 관심을 갖는 이들이 적지 않다. 어떤 정치적 사건이 발생한 장소의 독특한 성격을 알지 못한다면 사건의 본질을 제대로 파악할 수 없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복잡다단한 정치 세계에서는 특정 장소야말로 자신이 원하는 메시지를 담아 대중을 설득하는 효과적인 장치이기도 하다. 일종의 장소 마케팅이다. 국제 외교에서도 회담 장소의 정치학이 작용한다. 1970년 빌리 브란트 서독 총리와 빌리 슈토프 동독 총리는 25년 만에 처음으로 정상회담을 개최하면서 장소를 놓고 우여곡절을 겪어야 했다. 수차례 결렬된 끝에 회담 장소를 다른 곳으로 옮기자는 서독 측의 제안이 받아들여져 결국 동독 에르푸르트에서 역사적인 통일협상이 이뤄졌다.



하물며 대권을 노리는 정치인들은 말할 나위도 없다. 대선주자들은 출마선언 때부터 자신의 비전과 정체성을 상징하는 명당을 고르느라 경쟁을 벌이게 마련이다. 지난 대선에서도 야권 후보들이 서울 광화문광장을 놓고 희비가 엇갈리기도 했다. 요즘 대선정국을 맞아 후보마다 출마선언 장소를 놓고 고심을 거듭하고 있다는 소식이다. 이재명 성남시장은 자신이 몸담았던 성남의 시계공장을 선택해 최초의 ‘노동자 대통령’을 내세운다고 한다. 안희정 충남지사는 젊음의 공간인 서울 대학로에서 지지자들과 묻고 답하는 ‘마라톤 토론’을 택했다. 대권후보들의 시도 자체야 신선하기는 하지만 국민이 진정 원하는 것은 새로운 리더십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정상범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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