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텅빈 액자...혼돈의 영상...당신은 무엇이 보이는가?

'박현기-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展

백남준과 더불어 비디오 아트 선구자

포르노·종교화 뒤섞은 만다라 시리즈

한지에 담은 오일스틱 드로잉 등 전시

삼청로 갤러리현대서 내달 12일까지

박현기 ‘만다라 시리즈:카오스#2’ 1997년작 비디오설치작품 /사진=조상인기자




박현기 ‘만다라 시리즈:카오스#2’ 1997년작 비디오설치작품 /사진제공=갤러리현대


박현기 ‘무제’ 다듬이목과 철판 가변설치작품, 1990년작을 2017년에 부분 재재현 /사진제공=갤러리현대


박현기 ‘무제’ 1993~1994년작, 한지에 오일스틱 /사진제공=갤러리현대


하얀 벽에 사각의 철제 액자가 걸렸지만 그림 자리는 비었다. ‘무엇이, 어떻게 보이는가’ 작품이 묻는다. 액자와 벽만 보든 풍경을 그려보고 정물이나 인물을 상상하든 각자의 즐거움이다. 그 아래에는 숱한 다듬이질로 딴딴해진 오동나무 다듬이판과 오가는 기차를 떠받치며 풍상을 견딘 침목 등 75개의 나무조각 설치작품이 다닥다닥 붙은 채 놓였다. 박현기(1942~2000)의 1990년작 ‘무제’다. 휑한 공간에서 다듬이질 소리와 기차 경적이 울리고, 그 두드림과 여행의 두근거림이 교차한다. 물론 “아무 느낌 없이 싱겁다”라고 할 수도 있으나 별 상관 없다. 작가는 “보이는가 무엇 있는가, 무엇이 뭔가”, “이것인가 저것인가 아무 것도 아닐 수도 있다”(작가노트 중)고 했으니 말이다.

서울 삼청로 갤러리현대에서 ‘박현기-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전이 2일 개막했다. 한국 비디오아트의 선구자로 불리는 박현기는 독일·일본·미국 등을 누비며 활동한 백남준과 달리 ‘토종 국내파’다. 영상매체를 미술의 도구로 활용하고 자신의 몸으로 직접 예술언어를 표현한 그는 ‘작품을 어떻게 바라보는가에 따라 그 해석이 달라질 수 있다’는 생각을 깊이 파고들었다.



그의 대표작은 전시장 1층의 ‘만다라 시리즈’다. 살색과 신음소리가 중첩된 포르노그라피 수십 편이 작은 장면으로 나뉘어 빠르게 변화한다. 제목 ‘만다라’는 부처의 가르침과 깨달음을 표현한 밀교(密敎)의 종교화다. 벗은 남녀의 속살과 불상·신상의 이미지가 교차하는 작품은 ‘카오스(혼돈)’이라는 부제 아래 성(聖)과 속(俗)이 혼재한다.

홍익대에서 건축을 전공하고 이어 회화도 공부한 작가는 어느 날 ‘수입된 서양식 교육’에 함몰됐음을 한탄하며 대구 근교의 문중을 찾아 우리 고유의 전통과 선비정신에 눈 뜬 제법 유명한 일화를 남겼다. 그리하여 그의 작품에는 음양오행설에 기반한 동양사상과 변증법적 유물론을 비롯한 서양철학이 두루 녹아 있다. 돌 몇 개를 그저 듬성듬성 놓은 설치작품, 돌 사이에 텔레비전 모니터를 끼워 불상처럼 만든 작품 등 기발함 속에 철학적 성찰을 담았다.

지난 2015년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린 대규모 회고전이 설치작품과 기록물 위주였다면 이번 전시는 1993년부터 단 2년만 작업한 오일스틱 드로잉이 눈길을 끈다. 크레파스보다 무르고 립스틱보다 딱딱한 오일스틱을 접한 작가는 한지 위에 자유로운 생각과 몸의 흔적을 남겼다. 대구 화단을 근거지로 심문섭·이강소·최병소 등과 실험적인 현대미술을 선보이던 작가는 위암으로 이른 나이에 세상을 떴다.

도형태 갤러리현대 대표는 “지난 2015년 프리즈아트페어의 ‘스포트라이트’ 섹션에 개인전 형식으로 박현기 유작을 선보였는데 모마(MoMA)와 디아아트센터 등 유수의 미술관 관계자들이 깊은 관심을 보였다”고 소개했다. 이번 전시는 3월12일까지 계속된다. (02)2287-3585

/조상인기자 ccsi@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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