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기 말 미국에서는 3대 발명가들이 전기산업의 패권을 놓고 한판 승부를 벌였다. 바로 토머스 에디슨과 니콜라 테슬라, 조지 웨스팅하우스의 전류전쟁이었다. 당시 직류방식의 사업에 치중했던 에디슨은 경쟁자였던 웨스팅하우스의 교류방식을 깎아내리기 위해 갖가지 비열한 수단을 동원했다. 에디슨은 뉴욕주 교도소에 교수형 대신 교류방식을 이용한 전기의자를 도입하도록 압력을 넣었고 대중의 반감을 샀던 웨스팅하우스와 소송전까지 치러야 했다. 천재 공학자 테슬라(전기차 업체 테슬라도 여기에서 회사명을 따왔다)와 손잡은 웨스팅하우스는 결국 에디슨을 누르고 표준경쟁에서 승리했고 그 공로로 ‘에디슨 메달’까지 수상했다.
1886년 설립된 웨스팅하우스는 한때 미국의 자존심을 상징하는 대표기업이었다. 창업자인 웨스팅하우스는 열차의 공기브레이크를 비롯해 100여개 이상의 특허를 보유한 사업가로서 전기발전부터 가전, 레이더·미사일 발사장치 등을 아우르는 종합제조업체를 일궈냈다. 1920년 미국 대통령 선거를 맞아 피츠버그 본사 옥상에 텐트를 설치해 본격적인 방송국 시대를 개막하고 세계 최초로 상업용 원자로 개발에 성공한 것도 웨스팅하우스였다.
웨스팅하우스는 일본과도 오랜 인연을 갖고 있다. 1970년 오사카 만국박람회에서 첫 가동을 알린 출력 34만㎾짜리 미하마 원전은 웨스팅하우스가 만든 일본 최초의 상업용 가압수형 경수로였다. 웨스팅하우스를 원전 스승으로 여겨왔던 일본 기업들이 웨스팅하우스 인수전 당시 자존심을 걸고 붙은 것도 당연한 일이다. 도시바의 품에 안긴 웨스팅하우스는 그러나 잇따른 원전 사고로 시장 기반을 잃고 대규모 부실을 모기업에 떠넘기고 말았다.
사면초가의 웨스팅하우스가 한국전력에 러브콜을 보내고 있다는 소식이다. 한전으로서는 세계 원전 시장에 진출할 절호의 기회라는 점에서 유혹을 느낄 만하다. 하지만 원전사업 특유의 리스크나 시장여건을 따져볼 때 이래저래 한전의 고민도 깊어질 듯하다.
/정상범 논설위원 ssang@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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