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장 수준인 근로시간을 줄이는 것은 일자리 문제 해소와 일과 삶의 균형 차원에서 우리 사회의 과제이기는 하다. 정부가 근로시간 문제까지 아우르는 노동개혁을 줄곧 추진해온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하지만 이런 중차대한 법안이 사회적 합의 없이 졸속 처리된다면 심각한 후유증을 초래할 수 있다는 점에서 우려스럽다. 애초 안과 달리 무차별적인 근로시간 단축은 기업들을 생산량을 줄이거나 고용을 늘려야만 하는 양자택일의 선택에 내몰게 된다. 한국경제연구원은 인력 추가 채용으로 12조3,000억원의 인건비 부담이 가중될 것으로 추정했다. 중소기업들이 “충분한 유예기간을 두고 단계적으로 적용해야 한다”고 호소하는 것도 바로 이런 이유에서다.
더 큰 문제는 기간제법과 파견법 등 고용시장의 유연성을 겨냥한 노동개혁이 좌절된 마당에 근로기준법이나 산재보험법 등 노동복지를 증진하는 법안만 처리될 경우 산업현장에 심각한 힘의 불균형을 초래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국회는 과거에도 노동계의 압력에 굴복해 정년연장을 의무화하면서 임금피크제는 노사 합의로 떠넘기는 바람에 나라 경제에 큰 혼란과 갈등을 초래한 잘못을 저질렀다. 진정 근로시간을 줄이겠다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80%에 불과한 생산성부터 끌어올리는 게 더 시급하다. 일은 적게 하겠다면서 임금은 한 푼도 손대지 말라는 정규직 노조의 기득권을 타파하지 않는 한 경쟁력 제고는 요원한 일이다.
근로시간 단축은 생산성 향상이 수반돼야 일자리 나누기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무리한 법안에 앞서 근로시간과 생산성 문제에 대한 사회적 합의부터 이뤄져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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