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메뉴

검색
팝업창 닫기
이메일보내기

[인터뷰] ‘원라인’ 박병은, 늦게 피는 꽃이 ‘치명적인’ 배우

속았다. 배우 박병은이 영화 ‘원라인’(감독 양경모)에서 보인 차가운 야망가의 이미지가 실제 그를 만나고 나니 ‘완벽한 연기’임이 드러났다. 스크린 밖의 박병은은 다분히 민 대리(임시완) 같았고, 장 과장(진구) 같았다. 능청스럽다는 뜻이다. 여기에 진솔함과 개그감이 더해지니 더 없이 인간미가 넘친다. 어떻게 ‘진짜 박병은’을 숨기고 그런 냉혈한의 인물을 연기했을까. ‘원라인’을 둘러싼 거대 틀의 ‘기분 좋은 사기’다.

배우 박병은이 인터뷰 전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오훈 기자




29일 서울 종로구 삼청동 한 카페에서 서울경제스타와 만난 박병은은 “이번에는 또 다른 악역”이라고 ‘원라인’ 속 행동파 박 실장을 설명, 솟구친 자신감을 드러냈다. ‘원라인’은 평범했던 대학생 민재(임시완)가 전설의 베테랑 사기꾼 장 과장(진구)을 만나 모든 것을 속여 은행 돈을 빼내는 신종 범죄 사기단에 합류해 펼치는 짜릿한 예측불허 범죄 오락 영화. 그 속에서 박병은은 박 실장 역을 통해 줄곧 미동 없는 매서운 표정으로 야망 가득한 사기꾼을 선보인다.

“제가 촬영 들어가기 전에 염두 한 건, 시나리오 상으로만 봤을 때 박 실장이 자칫 평면적인 악역으로 흘러갈 수 있겠더라고요. 그래서 저는 기본적으로 박 실장이라는 인물이 왜 이렇게 달려가느냐, 성공과 돈에 집착하느냐를 많이 생각했죠. 이 친구는 가장 솔직한 인물인 것 같았어요. 돈, 명예에 있어서 다른 인물들은 명목조차 속이면서 의뭉스럽지만 박 실장은 있는 그대로가 다 오픈 된 거 같았어요. 겉보기에는 차분하고 젠틀하면서 조용한 사람일 거 같은데 화나면 무거울 것 같은 사람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큰 행동을 안 취해도 ‘저 사람에게 걸리면 죽겠다’는 공포감을 주는 사람.”

실제로 박병은은 영화 속에서 유난스런 표정 변화나 액션 없이도 살기를 풍기는 박 실장을 인상 깊게 연기한다. 고성과 과한 몸짓으로 악인을 표현하는 지름길도 있겠지만, 박병은은 ‘진짜’를 보여주고 싶었다. 캐릭터 파악을 해보니 악인이라고 다 같은 악인이 아니라는 것이다. “다른 인물이죠. 박 실장은 꿈에 나타날까 섬찟 하잖아요. 연기하면서 혹여 나의 ‘착함’을 속인 게 아닐까라는 의구심과 함께 죄책감도 있었어요.(웃음) 실제 저는 행복하고 유쾌하고 즐거운 거 좋아하고 사람들과 어울리는 거 좋아해요. 폭력 싫어하고 분위기 안 좋게 흘러하는 건 싫어해요.” 감각 있는 언변으로 틈틈이 개그감을 드러내는 그에게 ‘아재개그’라는 반응이 있다고 말하자 “‘아재개그’는 저를 폄하하는 거죠. 제 개그가 경지에 오른 걸 몰라주는 거예요.”라고 너스레를 떤다. 이런 치명적인 매력의 배우가 왜 이제야 비로소 유명세를 탄 건지 아까울 정도다.

대중들에게 박병은이라는 이름이 각인되기 시작한 것은 지금으로부터 몇 해 되지 않는다. 2015년 최동훈 감독 영화 ‘암살’에서 일본 장교 카와구치 역을 맡아 전지현, 이정재, 하정우, 오달수, 조진웅 사이에서 완벽하게 신스틸을 하는 데 성공했다. 역사 속 악인을 그대로 끄집어낸 것 같은 사실감에 대중의 시선은 절로 쏠릴 수밖에 없었다. 이번 ‘원라인’에서도 마찬가지. 임시완-진구의 브로맨스 활약에 절대 밀리지 않는 강력 등장으로 스크린을 압도한다. 과연 충무로가 믿고 필요로 할 만하다는 사실을 여지없이 입증한다. 아무리 생각해도 대중의 뒤늦은 발견이 아깝다.

“전혀 아쉽지 않아요. 제가 학창시절에 안양예고를 다녔는데, 거기에서부터 이미 재능 있는 친구들을 많이 봤죠. 그 당시 아이돌 제의도 받았는데 단칼에 거절했어요. 저는 그 때 예술학교에 처음 들어가서 연극을 배우면서 치기어린 마음에 ‘아이돌 안 돼. 나는 예술가야’라는 아집이 있었어요. 중앙대 연극과로 진학한 후에 20살 때도 그런 제의가 있었는데, 뒤도 안 돌아보고 ‘싫어요’ 했어요. 저는 그게 다행인 거 같아요. 지금 배우라는 직업이 너무 좋고 행복하거든요. 아이돌을 했다면 지금쯤 나는 뭐하고 있을까 싶어요. 저는 제가 배우가 돼서 자랑스럽다고 생각해요. 늦게 뜬 아쉬움이요? 전혀 없어요. 마흔 넘으면서 진짜 좋은 연기가 나온다고 생각하거든요. 저에게 생길 주름, 검버섯 그런 게 오히려 매력적인 거 같아요.”

“‘40대’라는 이름만으로 섹시한 거 같아요. 2~30대의 풋풋하고 혈기왕성한 부분이 농익어서 40대가 된 거 같아요. 50대가 되면서는 그런 부분이 더 만개하겠죠. 돌아보면 2~30대에 쌓았던 소신과 현장에서 공부했던 게 잘 정립된 것 같아요.”

배우 박병은이 인터뷰 전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오훈 기자


최근작 ‘드라마 스페셜-국시집 여자’에서의 30대이지만 성장통을 겪는 남자부터 거슬러 올라가 철부지 같은 남자, 아픔을 간직한 채 청개구리 기질로 정의를 위해 달려가는 검사, ‘극적인 하룻밤’에서는 여자에게 치근덕거리고 지질한 남자, ‘연애의 온도’에서는 젠틀하고 나이스하지만 무너지기도 하는 남자까지 알고 보면 스펙트럼 넓게 연기해온 그다. 그런 디테일이 쌓여 지금의 완벽한 악역이 빚어진 것일지도 모른다.

“‘암살’에서 카와구치 역할이 워낙 인지도가 있다 보니 악역으로 많이들 기억해주시는 것 같아요. 이제 첫 발 디딘 사람이라 그런 걸 굳이 염두 하지 않아요. 가슴 쓰린 멜로도, 말도 안 되는 코미디도 하고 싶어요. 지금까지 제 배우 인생으로 그런 면들을 함축시켜 왔다고 생각해요. 그것들로 앞으로 제가 여러 장르를 할 수 있다고 보거든요. 저는 스스로 ‘배우 박병은’을 믿고 있어요. 자신 있어요.” 과거 아이돌 제의도 받은 만큼 박병은의 훤칠한 외모도 결코 주목하지 않을 수 없는 부분이다. 그는 “제 비주얼 상당히 좋아해요. 여러 가지 의상, 소품에 따라 극악무도한 양아치도, 검사도, 건실한 청년도 다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부모님께 감사해요.”라고 솔직한 자신감을 내비친다.

스스로의 외모를 단지 흐뭇하게 평가하기보다 수많은 배역으로 표출할 수 있다는 장점으로 여기는 것부터 박병은은 천생 배우다. 애당초 예고에 진학하고 배우를 꿈꾼 이유가 궁금해졌다. “그 때는 원대한 꿈이 있었던 건 아니었어요. 일단 예고에 들어가고서 연극 개론부터 셰익스피어는 어떻고 하는 걸 배우면서 허파에 바람이 들어간 거죠. 멋에 취했던 거 같아요. 그래서 아이돌을 거절했죠. 지금 보면 19, 20살 배우로 첫 발 들인 시절이 되게 귀엽고 어린 나이에도 자기에 대한 확실한 꿈이 있었던 게 대견해요.”



“성격은 긍정적인 편이에요. 어떠한 일이 항상 잘 될 거라는 믿음이 있어요.”라고 조급해하지 않는 성격이 배우 진구와 닮아 있다. “진구가 저와 같은 동네에 살아서 ‘원라인’ 촬영하면서도 저희 집에 자주 왔어요. 처음에 ‘술 한 잔 할까’ 하면서 소주 한 잔 먹고 두런두런 얘기하면서 친해졌어요. 연기 얘기부터 힘들었던 얘기까지 하면서 ‘나도 힘들 때가 있었지만 여기까지 잘 온 거 같다. 원라인도 잘 해보자’라고 말했죠. 그 친구가 무게감이 있어서 듬직한 동생이 생긴 거 같았어요. 최근에 진구가 새 집으로 이사 갔는데, 이삿짐 들어가기 전에 또 술 한 번 먹었죠.”

배우 박병은이 인터뷰 전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오훈 기자


‘미생’, ‘변호인’부터 이제 본격적으로 배우의 길에 접어든 제국의아이들 출신 임시완과의 만남은 어땠을까. “시완 군을 이번 작품으로 처음 봤어요. 촬영에 들어가고 친해지면서 시완이가 연기에 대한 열정과 욕망, 하고 싶어 하는 의욕이 정말 크다는 걸 느꼈어요. 굉장히 깜짝 놀랄 정도였죠. 중요한 신이 있으면 전날 저에게 전화해 자기 생각을 말하면서 끊임없이 묻는 거 있죠. 아무래도 제가 연기 선배이니 그렇게 물어보는 게 기분 좋았어요. 시완이가 의문점을 물어보면, 저는 ‘그만큼 준비했으면 됐어’, ‘너무 많은 생각하지 말고 소주 한 병 먹고 자’라고 해줬죠.(웃음)”

최근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임시완은 ‘예전에는 공부하듯 연기를 했다면 지금은 어느 정도 나를 풀고 연기 한다. 이제 오래 연기할 수 있겠더라’고 밝힌 바 있다. 이 같은 그의 연기 전환에는 ‘원라인’ 형들(진구, 박병은)의 공이 컸다. 매 캐릭터에 과도하게 힘주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라는 걸 박병은은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연기에 정답은 없어요. 공부해서 잘 나오는 사람이 있고, 상황만 인식하고 들어가서 감정을 정해오지 않고 리액션으로 연기하는 사람도 있고. 시완이는 이번에 많이 버리려고 노력하더라고요. 우리 영화가 우울하고 침울한 영화가 아니지 않느냐고 말했죠. 임시완이라는 배우가 ‘변호인’에서 풀어진 채 연기를 했으면 분위기가 안 맞았을 텐데, 우리 영화는 우선 범죄 오락 영화다보니 심각한 장면이 없다고 생각했거든요. 경쾌하게 가자고 한 거죠.”

박병은은 2002년 ‘색즉시공’부터 ‘오로라공주’(2005), ‘싸이보그지만 괜찮아’(2006), ‘마린보이’(2008), ‘똥파리’(2008), ‘황해’(2010), ‘범죄와의 전쟁 : 나쁜 놈들 전성시대’(2011), ‘분노의 윤리학’(2012), ‘연애의 온도’(2012), ‘붉은 가족’(2012), ‘몬스터’(2014), ‘우는 남자’(2014) 등을 통해 상업영화, 독립영화 가릴 것 없이 수많은 단역과 조역을 촘촘히 거친 후 ‘악인은 살아 있다’(2014)의 첫 상업영화 주연에서 탄력 받아 천만 영화 ‘암살’(2015)부터 ‘극적인 하룻밤’(2015), ‘남과 여’(2015), ‘사냥’(2016), 그리고 ‘원라인’까지 존재감 확실한 조연 혹은 주연으로 차근차근 근면 성실히도 성장해왔다.

“이제 시작”이라는 그의 말처럼 곧바로 4월 5일부터는 KBS2 수목드라마 ‘추리의 여왕’, 26일에는 영화 ‘특별시민’ 개봉도 앞두고 있다. 올 하반기 개봉을 목표로 한 영화 ‘악질경찰’ 촬영까지 2017년은 박병은의 연기가 더욱 물오를 시기다.

“모든 장르의 영화를 다 좋아해요. ‘아수라’도 좋고 잔잔한 감성의 ‘8월의 크리스마스’도 좋아하고요. 영화는 배우, 사람을 보는 거라 생각해서 좋은 배우가 나오는 영화를 좋아해요. 제 직업이 배우이기 때문에 더 그런 것 같아요. 드라마도 좋은 작품 있으면 앞으로도 또 하고 싶어요. 거창하게 연기 방향성을 잡기보다는 다가오는 작품들에서 진심으로 최선을 다 하면 된다고 생각해요. 창피한 연기자가 되지 말자고 생각해요.”

배우 박병은이 인터뷰 전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오훈 기자


/서경스타 한해선기자 sestar@sedaily.com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주소 : 서울특별시 종로구 율곡로 6 트윈트리타워 B동 14~16층 대표전화 : 02) 724-8600
상호 : 서울경제신문사업자번호 : 208-81-10310대표자 : 손동영등록번호 : 서울 가 00224등록일자 : 1988.05.13
인터넷신문 등록번호 : 서울 아04065 등록일자 : 2016.04.26발행일자 : 2016.04.01발행 ·편집인 : 손동영청소년보호책임자 : 신한수
서울경제의 모든 콘텐트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복사·배포 등은 법적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Copyright ⓒ Sedaily, All right reserved

서울경제를 팔로우하세요!

서울경제신문

텔레그램 뉴스채널

서울경제 1q6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