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리사 메이 영국 총리가 유럽연합(EU)과의 브렉시트(영국의 EU 탈퇴, Brexit) 협상에서 안보 문제를 협상 카드로 활용할 수 있음을 시사했다. 이에 대해 EU 고위급 인사를 비롯해 영국 내부에서도 “노골적인 협박”이라고 비판하는 등 브렉시트 절차 개시와 동시에 양측이 팽팽한 신경전을 벌이기 시작했다.
29일(현지시간) 영국 가디언에 따르면 메이 총리는 이날 도날트 투스크 EU 정상회의 상임의장에게 전달한 브렉시트 통보 서한에서 영국이 합의안 없이 EU를 탈퇴할 경우 이는 안보 측면에서 범죄와 테러에 맞선 양측 간 협력 약화를 의미한다고 밝혔다. 향후 2년간 EU와 자유무역협정(FTA)·국경문제·합의금 등을 두고 ‘이혼 협상’을 벌여야 할 영국이 안보를 지렛대로 삼아 협상의 주도권을 쥐겠다는 의사를 드러낸 것이다. 영국은 해외 정보 수집력과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내 영향력 등 안보 측면에서 다른 EU 국가를 압도한다.
유럽의회의 브렉시트 협상위원인 기 베르호프스타트 전 벨기에 총리는 즉각 반발했다. 그는 “국민의 안전을 거래 대상으로 삼기에는 너무 중요하다”며 영국이 군사·정보 분야에서의 영향력을 협상 카드로 쓰려는 어떠한 시도도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유럽의회에서 두 번째로 큰 사회민주당을 이끄는 자니 피텔라 의원 역시 “메이 총리의 발언은 협박처럼 느껴진다”며 “사람들의 생명을 협상 대상으로 삼는 것은 격분할 일이고 결코 메이 총리에게 좋은 출발이 아니다”라고 비판했다.
영국 정치인들도 메이 총리의 발언에 반발심을 드러내고 있다. 팀 패런 영국 자유민주당 대표는 “안보 문제가 무역협상과 연계될 수 있다는 점을 시사한 메이 총리의 발언은 EU가 영국에 유리한 합의안을 내놓지 않으면 안보 협력을 하지 않을 수 있다는 노골적인 협박처럼 들렸다”고 말했다. 영국 노동당 의원인 이베트 쿠퍼도 “메이 총리는 안보를 협상 카드로 사용하려 해서는 안 된다”며 “이는 다른 EU 국가에 대한 위협이 아니라 심각한 자해행위가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박홍용기자 prodigy@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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