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산 원유의 최대 수입국이 캐나다에서 중국으로 바뀌면서 미국산 셰일오일이 석유수출국기구(OPEC)의 전통적 텃밭이었던 아시아 시장까지 노린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OPEC이 감산에 들어간 사이 원유 수출을 늘리고 있는 미국이 아시아 시장을 지렛대로 삼아 글로벌 원유시장 패권국 중 하나로 도약할 수 있다는 전망도 조심스레 고개를 들고 있다.
블룸버그통신은 4일(현지시간) 미 상무부 자료를 인용해 중국의 미국산 원유 수입량이 지난 2월 808만배럴을 기록해 캐나다(684만배럴)를 제치고 1위를 기록했다고 보도했다. 이 같은 중국의 수입량은 전월보다 네 배나 늘어난 것이다. 중국과 캐나다에 이어 싱가포르의 수입량이 203만배럴에 달했고 그 뒤를 일본·한국이 잇는 등 아시아 국가의 수요 확대가 특히 두드러졌다.
미국은 중동 원유를 주로 수입해온 아시아를 발판으로 세계 에너지 시장에서 입지를 넓히는 모습이다. 같은 달 미국의 원유 수출량은 3,120만배럴로 사상 최대를 기록했으며 미국의 일일 원유 생산량도 지난달 100만배럴을 넘는 등 가파르게 증가하고 있다.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미국의 원유 생산량은 지난해 12월 기준으로 전 세계 산유국 중 3위를 기록했다. 에너지컨설팅 업체 터너메이슨의 존 아우어스 부사장은 “미국이 OPEC 회원국과 비교해도 더 많은 원유를 수출하고 있다”며 미국의 올해 원유 수출량이 지난해 수준을 웃돌 것으로 전망했다.
아시아 국가들이 미국산 원유로 눈을 돌리는 것은 그동안 꾸준히 수입해온 중동발 석유 가격이 OPEC의 감산 합의로 급등했기 때문이다. 아시아 원유시장의 벤치마크 상품인 두바이유 가격은 미국산 원유를 대표하는 서부텍사스산원유(WTI)보다 낮은 수준에 머물러왔다. 하지만 지난해 11월30일 OPEC의 감산 합의 이후 급등해 2월28일을 기점으로 역전한 상태다. 올해 WTI 가격은 두바이유보다 배럴당 0.50달러 정도 낮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이로 인해 아시아 국가들은 비교적 낮은 품질의 두바이유를 비싼 가격에 구입할 필요가 없어졌다. 영국의 에너지 시장 조사기관인 에너지애스펙츠의 도미닉 헤이우드 애널리스트는 “WTI와 두바이유의 가격 차이가 벌어질수록 아시아 국가들의 협상력은 커지게 될 것”으로 전망했다.
미국이 아시아 원유 시장에서 영향력을 확장하자 텃밭을 내주게 된 OPEC은 ‘감산 이행’과 ‘에너지 시장 방어’를 동시에 달성하는 고난도 방정식을 풀어야 하는 처지가 됐다. OPEC의 실질적 리더인 사우디아라비아는 지난달 아시아 수출용 경질유의 4월 인도분 가격을 0.15~0.30달러 인하하며 ‘감산의 여파로 가격을 배럴당 0.30달러 정도 올릴 것’이라는 시장의 예측을 뒤집었다.
싱가포르 아이비글로벌에너지의 투샤르 타룸 반잘 컨설턴트는 “시장을 놀라게 한 깜짝 결정”이라며 “사우디가 에너지 시장 점유율과 가격 경쟁력을 심각하게 걱정하고 있다는 징후”라고 평했다. /변재현기자 humbleness@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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