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력 균형으로 완충(緩衝)의 길을 걷는 것만이 대한민국을 지킬 방법입니다. 그래서 완충의 길을 보여준 역사 속 인물 신헌을 주인공으로 소설을 썼습니다.”
국내의 대표적 사회학자인 송호근 서울대 교수는 5일 서울 인사동 신영기금회관에서 열린 그의 첫 장편소설 ‘강화도(나남 펴냄)’의 출간 기념 간담회에서 “강화도 수호조규는 오늘날 한국이 처한 국제적 현실의 출발점”이라며 “문무를 겸비한 유장이 강화도조약에 외교관으로 나서 어떻게 조선의 위기를 극복했는지, 그 역사를 현실에 대입해보면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며 집필 의도를 밝혔다.
‘강화도’는 1876년 강화도조약 체결 당시 전권을 위임받고 협상대표로 나선 신헌(申櫶·1811~1884)을 중심으로 19세기 후반의 조선과 세계사를 담은 역사소설이다. 강화도조약은 한국 외교사에서 꼽히는 대표적인 불평등 조약이지만 “날아오는 창을 붙잡고 자신이 쓰러지며 창이 조선의 깊은 심장에 박히지 않도록 만든 신헌 덕분에 시간을 벌 수 있었다”고 강조했다.
이야기의 주제는 자연스럽게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 배치를 둘러싼 한중 갈등으로 넘어갔다. “지난 100년간 일본·미국과 한국은 군사동맹을 맺고 있습니다. 군사동맹을 탈퇴한다면 사드 배치를 반대할 수 있지만 이에 대한 충분한 이유가 있어야 합니다. 반대로 중국과 우리는 역사동맹입니다. 군사동맹과 역사동맹의 사이에 끼어 있는 한국으로서는 양쪽 동맹을 평평하게 유지하려면 역사동맹에 사드에 준하는 선물을 줘야 합니다. 그러지 않으면 해결이 안 되죠. 21세기의 신헌이라면 역사동맹을 유지하기 위한 사드가 무엇인지를 물었을 것입니다.”
송 교수의 눈에 대선주자 중 이 시대의 신헌은 누구일까. 송 교수는 단호하게 “없다”고 답했다. 송 교수는 “여당의 대선후보들은 사드에 대해 애매모호한데 이는 지도자로서 결격 사유”라며 “분명한 입장을 밝히고 선택에 따른 후폭풍을 견딜 수 있는지 물어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이번 대선에서 남북 문제는 아예 소멸된 화두고 국제관계에 대한 논의 역시 사드 문제를 제외하고는 사라져버렸다”며 “지정학적으로 중요한 입지에 있는 대한민국의 리더라면 어떻게 이 비싼 땅을 비싸게 지켜낼 것인지 고민하고 답을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송 교수가 집필을 시작한 날은 국회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안이 가결된 지난해 12월9일이다. 송 교수는 “과거에 제대로 처리하지 못하고 봉합된 채로 흘러온 과거가 어떤 미래를 만들어낼 것인지, 고민이 나를 촉발했고 춘천의 누가로 들어가 집필을 시작했다”며 “매일 10시간씩 두 달을 꼬박 쓰고 2월20일께 글을 마쳤다”고 말했다. 300여쪽에 가까운 소설을 한달음에 써내려간 데는 오랜 기간 그의 머릿속을 누빈 생각의 파편들이 있었다. 그는 서울대 사회학과 3학년이던 지난 1977년 ‘김춘수 시론’으로 대학문학상에 응모했다가 떨어진 적이 있다. 이후 그는 사회평론으로 방향을 돌렸다. 송 교수는 “40년간 마음속에 소설 쓰기의 꿈을 품었고 내게 이번 소설은 ‘응답하라 1977’”이라며 “논문은 하나의 선과 색채로 강약도 없고 인물들의 고민도 드러나지 않아 답답할 때가 많은데 소설은 사람들의 가슴속을 파고들 수 있어 매력적”이라고 말했다.
앞으로 송 교수는 장르를 가리지 않고 다양한 글을 소화하는 문사의 길을 택하겠다고 했다. 다음 소설의 주제도 구상해놓았다. 평양 출신으로 재일 한인문학의 효시로 여겨지는 고(故) 김사량 작가다. 송 교수는 “김사량의 작품에는 김승옥·박경리 등 현대문학의 씨앗이 담겨 있다”며 “소설로 남북 문제, 통일 문제에 대한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소설가 김훈 작가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송 교수는 “김훈의 ‘칼의노래’ ‘남한산성’ ‘흑산’ 세 작품이 합쳐진 근대의 시작에 신헌이라는 인물이 있다”며 “‘김훈이 이걸 써야 하는데 왜 안 썼을까’ 생각하다가 이 소설을 나에게 쓰라고 놓아뒀구나 하는 생각에 고마웠다”며 웃었다. 송 교수는 김 작가에게도 책을 보낼 계획이다.
/서은영기자 supia927@sedaily.com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