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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터리] 유전자 검사와 규제자의 역할

정현용 마크로젠 대표





지난 4월6일 미국 식품의약처(FDA)는 캘리포니아의 유전자 검사업체 ‘23앤드미’가 파킨슨병·알츠하이머병을 포함한 10종의 질환 유전자에 대해 의사를 거치지 않고 유전자 분석 서비스를 소비자에게 판매할 수 있게 됐다고 발표했다. 국내의 경우 기업이 기존에 허용된 46개 유전자 외 각종 질환의 위험도를 높이는 돌연변이를 검사할 수 있는 유전자 분석 상품을 소비자에게 직접 판매하는 것은 금지돼 있다.

23앤드미는 구글의 창업자 세르게이 브린의 아내 앤 워치츠키가 2006년 창업한 기업으로 소비자에게 직접 유전자 검사를 제공하는 사업모델(direct-to-consumer·DTC)을 최초로 제시하면서 주목을 끌었다. 23앤드미의 새로운 시도는 의료계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2008년 미 타임스지가 선정한 올해의 기술로 선정되는 등 실질적인 성과를 내면서 착실하게 성장했다. 하지만 구글의 후광과 유명세에도 불구하고 23앤드미는 2013년 미 FDA가 검사 결과의 정확성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면서 상업적 검사를 중단했으며, 부족한 부분을 보완한 후에 다시 서비스에 나서게 된 것이다.



우리는 FDA가 기업들을 대하는 자세에서 한 가지 교훈을 얻을 수 있다. 처음에 23앤드미가 사업을 시작한 당시에는 예상이 가능한 치명적인 문제가 없는 부분에 한정해서 사업을 수행하도록 했다. 사업이 안정되고 많은 사람이 DTC 유전자 검사에 대해 열정적인 지지를 보내고 있을 때, 미 FDA는 냉정을 되찾고 엄밀한 과학적 검증과 사회적 논의가 이뤄질 수 있도록 해당 기업의 사업을 중단시키는 ‘악역’을 맡았다. 이후 기업의 부단한 노력에다 사회적 논의가 이뤄지자 다시 규제를 풀면서 사업 추진에 힘을 보태줬다. FDA의 행보야말로 ‘4차 산업혁명’에서 클라우스 슈밥이 제안한 “규제자의 기민한(agile) 관리 방법의 훌륭한 사례”라고 부를 만하다.

FDA는 소비자 유전자 검사 시장이라는 신산업의 발아기에 전통적 의료산업의 기준을 적용해 싹을 자르는 우를 범하지 않고, 인내심을 갖고 지켜봤다. 이후 검사 결과의 정확성과 사회적 이해도를 기준으로 상식적 수준의 문제 제기를 했으며 기업이 이를 뒷받침하지 못한다고 판단이 되자 규제를 통해 제어했다. 하지만 그 규제는 새로운 산업을 육성하고 사회적 논의의 성숙을 위한 기다림이 궁극적인 목적이었다. 이런 기다림에 화답하듯 23앤드미는 철저한 준비를 통해 규제를 스스로 풀어갔다. 4차산업 혁명을 통해 재도약을 꿈꾸는 대한민국의 정부와 기업이 참고할 만한 타산지석(他山之石)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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