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갑작스러운 ‘한국 부담’ 발언으로 파문이 일고 있다. ‘주한미군의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 배치 비용 10억달러(약 1조1,300억원)를 한국이 부담하기를 원한다’는 트럼프의 발언은 예상하지 못했던 돌발변수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트럼프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까지 거론하며 재협상 아니면 종식시킨다고 공언했다. 국방과 경제 양 부분에서 압박이 동시에 시작된 셈이다.
국방부는 이에 대해 기존의 원칙을 재확인했다. “한국이 부지와 기반시설 공사를, 사드 체계의 전개, 유지 및 운용 비용은 미국이 부담한다”는 기존 원칙은 변함이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 중에는 ‘한국에 통보했고 한국이 이해했다’는 대목이 나온다. 한국과 미국 정부 둘 중 하나는 거짓을 말하고 있는 형국이다. 외교안보 라인은 트럼프 발언의 속뜻과 진위를 파악하기 위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국방부 장관과 합참의장 등 수뇌부가 모인 28일 오후4시 전략회의에서도 이 문제를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문제는 뾰족한 대응책이 없다는 점이다. 정부는 당분간 말을 아끼고 사태 파악과 대응 논리 마련에 주력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대선을 앞둔 각 정당 후보 진영은 즉각 반응을 내놨다. ‘트럼프 발언’이 국민감정을 자극하고 득표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이는 차기 정부가 초기 대미 관계를 설정하는 데 적지 않은 난관을 예고하는 대목이기도 하다.
트럼프 대통령은 왜 이렇게 발언했을까. 일각에서는 ‘협상의 기술’로 해석한다. 본인이 강조했던 ‘불공평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의 독소조항을 고치고 오는 2019년 갱신해야 하는 5년 단위의 한미 방위금분담협정에서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기 위해 처음부터 강력한 카드를 꺼냈다는 해석이다. 사드 포대를 추가 배치한다는 계획 아래 한국의 비용 분담을 최대한 이끌어내겠다는 의도가 담겼다는 풀이도 나온다. 물론 이에 대한 의문도 있다. 아무리 ‘협상의 기술’의 저자라 해도 미국 대통령이 실무자들이 다룰 협상에서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기 위해 동맹국을 대상으로 약속을 뒤집는 발언을 하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분명한 점은 트럼프의 의도와 관계없이 한미 관계는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최종건 연세대 교수(정치외교학)는 “발언 원문을 살펴보고 육성을 들으면 ‘한국을 방어하는데 왜 우리가 돈을 내야 하느냐’는 트럼프의 의지가 확고해 보인다”며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한미 동맹에 대한 트럼프의 생각이 우리와 많이 다르게 보인다는 점”이라고 말했다. 혈맹과 선의로 동맹을 이해하는 한국과 달리 미국은 철저하게 이익과 계산으로 일관하고 있다는 것이다. 최 교수는 “우리는 그렇게 못했기 때문에 새로 출범한 정부가 힘들어질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우려했다.
경제와 국방 양대 부문에서 돈을 내라는 미국 식 일방주의가 현실화하면 재정적 부담도 문제지만 국론과 정치권의 분열은 더욱 심해질 것으로 전망된다. 트럼프가 ‘끔찍한 협상( horrible deal)’이라고 표현한 한미 FTA 재협상이나 사드 비용 추가 부담은 대외조약이거나 막대한 예산이 수반돼 국회의 동의를 거쳐야 하는 사안이다. 트럼프의 발언대로 한미 간 ‘이면 합의’가 있었을 경우 현 정부와 차기 정부 간 책임 공방전까지 예상된다.
더욱 우려되는 대목은 트럼프 대통령이 후보 시절 언급했던 한국에 대한 공약들만 유독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는 점이다. 당선 이후 중국과 일본에 대한 생각이 바뀌는데도 한국에 대한 그릇된 인식은 하나도 바뀐 게 없다는 점은 한국만 ‘미국 우선정책(American First)’의 희생양으로 전락하는 구도를 예고하는 대목이다. 중국에 경제보복을 당하고 일본과 관계가 냉각된 마당에 미국에도 소외된 채 청구서만 받는 ‘코리아 패싱(Korea Passing)’ 현상 속에서 짊어져야 할 부담만 커지고 있다.
/권홍우 선임기자 hongw@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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